1995년 첫 민선 지방선거인 6·27 선거에서 초대 민선 제주도지사로 당선됐다. 진정성을 이해해 준 도민들이 무한히 고마운 것도 있지만 사실 당시의 당선은 검찰이 꽤 도와준 측면이 있다. 지금도 억울한 일이지만 그 당시 제주지검은 얼토당토 않은 사건을 엮어 사전선거운동으로 나를 기소했고, 그로 인해 오히려 도민들은 분노했다. 그런 제주도민의 감정이 오히려 나의 득표를 도운 기현상으로 뒤바뀐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차후 다루려 한다. 그보단 취임 이후 불거진 ‘물’에 얽힌 비사(秘事)를 이제 밝히려 한다.
6·27 선거에서 당선되자마자 한진그룹의 조중훈 회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좀 만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공약으로 내세운 ‘제주공기업 발(發) 생수사업’에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어느 날 점심 무렵 한진그룹의 소유하고 있는 제동목장 안의 별장으로 초대를 받았다. 조 회장 부부와 그의 장남 조양호(현 한진그룹 회장), 그리고 우리 부부가 서로 얼굴을 맞댔다. 당선 축하와 더불어 ‘잘해보자’는 덕담이 오고 갔다. 더욱이 그는 내가 관선지사로 재임하던 1995년 2월 인접지역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한한공 비행훈련원의 활주로 확장공사 사업을 승인한 사실을 들어 한껏 나를 치켜세웠다.
그 개발사업 승인은 제주개발특별법 제정 4년만에 첫 제주도지사의 처분이었고, 제주개발의 문호를 열었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제주공항에 이은 보조·예비공항으로서 격을 갖추면서 비상시나 전시에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정부를 설득해 모슬포지역의 군사용지인 알뜨르 비행장터 64만평도 주민환원에 나설 수 있는 길을 틀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내린 결론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무르익어 점심을 거의 끝내고 그 자리를 뜰 무렵 난 불쑥 그에게 물었다. “회장님! 제주도 지하수 가지고 물장사 하실 생각입니까?” 일순간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말을 되받았다. “신 지사! 제주 물 가지고는 돈 벌 생각 없소. 나에게 물은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布施) 같은 것이요. 나는 물로 보시를 하고 싶소.” 그렇게 그는 손사래를 쳤다. 물로 장사할 뜻이 없다는 소리였다.
조 회장과의 오찬회동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제주도 수자원개발기획단과 제주개발공사에 제주생수 개발사업의 본격 추진을 지시했다. 이미 그 이전 해인 94년 11월 지방자치경영협회로부터 “제주도가 광천수 개발의 최적지이자 사업전망 또한 대단히 밝다”란 보고서도 받아둔 상태였다. 곧바로 농업진흥공사(현 농업기반공사) 제주지사의 협조를 얻어 생수공장 후보지로 조천읍 교래리 군유지를 정했다. 당시로선 지하수 전문가가 드물었기에 농업진흥공사 지하수부장인 제주출신 진성원씨를 개발공사의 기술이사로 스카웃했다. 내가 농업진흥공사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친구다. 부탁이다”고 말하며 영입했다. 그리고 그 기술진들이 지구물리탐사 기법을 동원하며 찾아낸 최적지가 바로 그곳이다. 제동흥산이 보유한 생수 취수지보다 해발고도가 100m 높은 420고지인데다 지하수공을 굴착, 파 본 결과 지하에서 바다로 빠지는 물을 찾아낸 것이다. 우린 그 부지에 지하수 1공당 1천톤의 물을 뽑아 올릴 수 있는 지하수 취수공 3공을 뚫었다. 하루 3천톤의 물을 뽑아 올릴 수 있게 한 것이다.
1996년 11월26일 제주지방개발공사 생수공장을 준공했다. 연간 14만7천 톤의 먹는 샘물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규모였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때 계획은 그보다 더 야심찼다. 장차 하루 1만 톤의 물을 뽑아 올려 제주생수를 시판할 생각이었다. 프랑스의 에비앙이 하루 8천 톤을 생산하고 있던 터라 하루 1만톤, 연간 300만톤을 생산하게 되면 에비앙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규모가 된다. ‘세계 최대의 물산업 전진기지’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 난관의 연속됐다. 일이 본격화되던 중 제동흥산으로부터 소송이 들어왔다. 조 회장의 말을 믿고 ‘물장사’를 하지 않을 것으로 알았는데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당시 제주도가 재이용허가권을 갖고 있던 제동흥산의 지하수 굴착이용 재허가 신청내용에 “전량수출 또는 주한 외국인에 대한 판매에 한한다‘는 등의 부관(허가조건)에 대해 취소를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그 때부터 제동흥산이 생수시판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제동흥산은 96년 2월 허가부관의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심판을 건교부장관에게 청구했다. 건교부 행정심판에서 제주도는 패했고, 우린 광주고법에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당시 제주도와 한진그룹 간의 치열한 법정다툼의 자세한 쟁점은 이 공간에서 멈추겠다. 그 때의 송사(訟事)는 여러 가지 부당한 부분이 있지만 어찌됐건 제주도의 패소로 이어졌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때 소송의 핵심은 제주도의 지하수를 ‘장사를 하기 위한 원자재(原資材)’로 본 기업과 ‘지켜야 할 자원(資源)’으로 본 공익기관인 제주도의 분쟁이었다는 사실만 이해해주길 바란다.
법정분쟁만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다양한 차원의 압력도 들어왔다. 하루는 당시 지역일간지 회장을 맡고 있던 K모 씨가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제동흥산 생수시판 건 때문이려니’라고 생각했다. 1996년 2월 말 낮 12시 남서울호텔(지금의 더 호텔) 2층 한식당에서 만났다. 예상대로 그는 그 문제를 꺼냈다. 자신이 중재자 역할을 맡겠다고 했지만 그의 표현은 거의 한진그룹의 대리인 격이었다. 그동안의 경과와 제주지하수의 공익적 개발 필요성을 소상히 그에게 설명해줬다. 그러나 막무가내였다. 그는 “도가 경영에 대해 뭘 아느냐? 우리는 실물경제를 안다. 제주도는 대한항공에 원수대나 많이 받고 물을 팔면 될 것 아닌가?”라며 원색적인 말을 거침없이 해댔다. 나는 그에게 “대한항공으로부터 로비를 받은 거냐? 더 이상 이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고 말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어찌됐건 제주도는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에서 연거푸 패소했다. 96년 6월 경에 이르자 어느 날 조 회장이 계열사인 ㈜한진의 이모 대표이사를 특사자격으로 나에게 보냈다. 조 회장의 조카사위라고 들었다. ‘항복하라’는 최후통첩이었다. 그대로 듣고 있을 수 없었다. “대법원까지 가서 결판을 냅시다. 아마 몇 년이 걸릴 텐데 그동안 제주도지사가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지사의 권한으로 면세점과 목장, 비행훈련원, 호텔 어느 곳이든 한진그룹 계열의 제주도내 전 사업장에 대해 손 보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도무지 협력이 어렵다고 판단했기에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할 생각이었다. 그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는 말을 멈추고 “알았다”고 말한 뒤 돌아갔다.
그후 며칠이 지나 조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만나자는 것이다. 차일피일 시일을 끌다 겨우 시간을 내 만났다. 1996년 9월 28일 오후 3시. 제주시내 칼호텔 2층 소연회장에서 두 사람만 얼굴을 마주했다. 사실 지금부터 할 얘기는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라고 보기에 그 때의 내 일기와 메모 등을 뒤져 곧이 곧대로 도민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한다. 물론 그 때 이후로 내 기억 속에서도 또렷이 각인된 일이다. 그냥 대화체로 정리하겠다.
조 회장: 지난 일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도지사와 내가 싸우는 것은 서로 달걀로 바위치기다. 둘 다 손해다. 앞으로 유사장(유상희 제동흥산 대표)에게 모든 것을 지시해 놓겠다. 잘 협력해달라.
신구범 지사: 지난 이야기는 할 필요 없다. 조 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다. 조 회장께서 내게 한 이야기, 내가 조 회장에게 드린 말씀이 잘 지켜지기만 하면 된다. 조 회장의 뜻이 현지에 잘 전달이 안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꽈배기 꼬듯’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한번 신뢰했으면 그 신뢰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조 회장: 확인해 두겠다. 한진은 물사업을 하지 않겠다. 물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신구범 지사: 진심으로 감사하다. 조회장님이, 한진그룹이 제주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협력하겠다. 지사로서 적극적으로 돕겠다.
그 말까지 이어지자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정치에 대해 조언하겠다”고 툭 말을 던졌다. 그리고선 다음의 말을 이어갔다.
“신 지사! 97년에 대선(大選)이 있다. 그 대선을 통해 차기(1998년 6·4 지방선거) 도지사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도지사로서 대선에 필요한 정치자금, 그리고 도지사 선거에 필요한 선거자금 모두를 내가 내겠다.”
느닷없는 말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공개하지 않은 사연이다. 나로선 갑자기 듣게 된 엉뚱한 말인지라 나도 모르게 “아니 도대체 그 많은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겠다는 말씀이냐”고 그에게 말을 꺼내봤다. 그의 답변은 지금도 내 가슴을 억누르고 있다. “우리 제주도민들이 이렇게 당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 온다.
그의 답변은 이랬다. “그런 정도 돈은 쉽게 조달하는 방법이 있다. 정부 로비를 하면서 항공운임을 인상하게 되면 비자금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비자금이 조성되면 거기서 떼 줄테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다.”
충격을 받았다. 조 회장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봤다. 멀리 내다보고 나를 매수하려는 건지, 아니면 대기업 회장으로서 입에 담기 어려운 비자금 얘기를 꺼내 신뢰를 쌓겠다는 것인지 그 진의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받아들일 제안은 아니었다. 더 말을 끌 것도 없이 “고맙지만 사양합니다. 약속한 대로 생수사업만 확실히 포기해달라”는 말을 하고 그와 헤어졌다. 그와의 만남을 마치고 지사 집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수많은 도민들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갔다.
가족·친지를 만나러 어쩔 수 없이 뭍으로, 고향으로 오고 갈 수 밖에 없던 그들의 알토란 같은 돈이 항공료 인상 과정에서 비자금으로 세탁돼 선거자금으로 쓰인다는 그 말에 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껏 이 말을 가슴 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고 조중훈 회장의 약속이 지켜지리라 믿었고, 묻어두는 것이 고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이제 진실의 편에 서려 한다. 더 이상 묻어두어선 안된다고 보기에 이제 도민들께 이 사실을 말씀드린다.
한번도 아니고 반복되는 한국공항의 행태를 보면서 고인의 뜻과 제주도민 모두가 무시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러고도 우리가 한진그룹의 지하수 취수량 증산을 허용해야 하는가? 이를 막아야 될 제주도 집행부가 증산을 허용해달라고 의회에 동의를 요청하는 건 또 무슨 연유인가? 우리 제주도민들이 너무나 애처롭다. <12편으로 이어집니다>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
이어 첫 민선 지방선거인 95년 6·27선거에선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돼 31대 지사를 역임했다. 그러나 98년, 2002년 두 번의 제주지사 선거에선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후 축협중앙회장을 거쳐 친환경 농업회사법인인 (주)삼무와 전시판매장인 삼무힐랜드를 운영했지만 지사 재직시절 뇌물수수사건에 휘말려 2년여 수감된 뒤 풀려났다. 삼무힐랜드는 수감기간 중 문을 닫았다.
제주삼다수와 관광복권,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제주세계섬문화축제 등이 그의 지사 재직시절 작품이다. 현재 제주생태도시연구소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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