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먹을 것은 삶의 근본이다. 본래 의미에서 말하면 거지가 구걸하는 것은 먼저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다. 그렇게 거지와 음식 습속 사이에 관계가 발생한다.
▲교자(餃子)피 전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예전에 큰 부자가 있었다. 별명이 ‘만대야(萬大爺)’였다. ‘노래향(老來香)’ 교자관의 교자가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하자 맛보고 싶어 찾아갔다. 점원이 대접을 소홀이 할 수 없어 곧바로 교자를 가져다주었다. 만대야가 한 입을 깨물고는 입을 쩝쩝 다시면서 말했다.
“이 교자는 재미가 좀 있구먼. 피는 크고 소는 작아.”
그러고서는 교자 소만 먹고 피는 바닥에 뱉어냈다. 탁자 주위가 교자피로 가득할 때까지 먹었다.
어느 날, 만대야가 그곳에서 교자를 먹고 있는데 때마침 늙은 거지가 교자관으로 들어왔다. 바닥에 널려져 있는 교자피를 보자 허리를 굽혀 두 조각을 주워 입에 넣었다. 그때 만대야가 거지의 손을 발로 차면서 욕을 해댔다.
“이 죽지도 않는 늙은이. 눈깔 삐었어? 그건 내가 내 돈으로 산 건데. 네가 줍긴 왜 주워. 꺼져!”
점원은 문제를 일으킬까 염려되어 급하게 늙은 거지를 밖으로 내보냈다. 만대야는 매일 교자관에서 교자를 먹었고 변함없이 소만 먹고 피는 바닥에 버렸다.
그해 가을, 산에 큰불이 났다. 만대야의 집까지 번져 만금의 가산이 몽땅 타버렸다. 며칠 사이에 빈털터리가 되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걸식 주머니를 지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구걸하는 거지가 되었다.
어느 날, 그는 구걸하다 ‘노래향’ 교자관 문 앞에 이르렀다. 주머니에는 동전 몇 푼밖에 없어 교자를 사먹을 수 없었다. 배가 고파 꼬르륵 소리가 났다. 들어가 뭐 좀 먹고 싶었다. 점원이 그를 쫓아내려다 예전의 만대야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당신은 우리 집의 단골이셨지요. 앉으세요. 먹을 것을 좀 드리리다.”
말하면서 만대야를 구석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탁자에 앉혔다. 조금 기다리자 뜨끈뜨끈한 탕면 한 사발을 가지고 와서 건네주며 말했다.
“드세요. 이것은 제가 그냥 드리는 겁니다.”
만대야가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던 점원이 맛있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점원이 말했다.
“교자피로 만든 겁니다. 이 교자피는 예전에 만대야께서 바닥에 버린 것을 제가 하나하나 주워서 말려뒀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 그랬지요. 오늘 다행히도 만대야께서 한 사발을 드시네요.”
만대야는 멍하니 남아있는 탕면을 바라보았다.
탕면을 들고 있던 손이 떨렸다. 남아있던 탕면이 쏟아졌다. 빨리 나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두 다리가 너무 무거워 들리지 않았다. 온힘을 다하여 나아가려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중국에는 이런 유형의 전설이 많다. 검소함을 모르는 부자가 거지가 되어서야 부끄러움을 알고 각성한다는 민간 전설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전해온다. 동일하거나 비슷한 이미지이다.
미국 학자 정내통(丁乃通)의 『중국민간고사유형색인(中國民間故事類型索引)』의 ‘보통 이야기’ 중 ‘생활 이야기’에서 이와 유사한 내용이 보인다. 내용은 이렇다 :
한 부잣집 방탕한 아들이 거의 매일 쌀밥, 국수를 하수구에 버리면서 안중에 두지 않았다. 나중에 부친이 파산하자 그 또한 배고픔이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밖에서 구걸하고 있을 때 가난한 이웃이 맛있는 음식을 건네주었다. 그가 감격해 먹고 있을 때 가난한 이웃이 그것은 예전에 매일 하수구에 버렸던 음식을 주워서 보관해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유사한 사례를 고대 문인 필기에 기록돼 있다. 사람들은 한 세대 한 세대 이런 유형의 민간 전설을 가지고 후대에 전하며 알려주고 있다. 후세에 양식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부유할 때 사치하지 말라는 교육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비슷한 전설 중에 권고를 듣지 않으면 비참한 처지가 되는데 그것이 거지로 전락하는 것이라 결론짓고 있다.
음식은 인류 생명을 유지하고 연속시켜주는 가장 기본적인 필수 소비다. 이 기초 아래 형성된 여러 음식 습속은 대부분 어떻게 하면 잘 먹을 수 있고 건강에 유익한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좋은 음식 습속은 이외로 거지와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육고천(陸稿薦) 전설
강소성 장강 이남의 소남(蘇南) 지역에 ‘육고천(陸稿薦)’이란 상호를 가진 조제식품점이 많다. 어떤 음식점은 상호 앞에 ‘진짜(眞)’, ‘원조(老)’와 같은 글자를 덧붙여 구별하고 자신을 추켜세우기도 한다.
육(陸)은 성이다. 고천(稿薦)은 고천(藁薦)으로 짚으로 짠 자리, 즉 거적이다. 원래 가장 오래된 ‘육고천’은 소주(蘇州) 초방교(醋坊橋)에 있었다. 본래 이름은 ‘도영재(陶永齋)’이다.
원래 주인이 육(陸) 씨로 선행을 좋아해 많은 자선사업을 하였다.
어느 날, 남루한 옷차림에 병색이 완연한 거지가 구걸하러 찾아왔다. 점주는 그를 머물게 하고는 의사를 불러 병까지 치료해주었다. 거지는 병이 완쾌되자 새벽에 인사도 없이 침대 위에 거적 하나만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주인은 사람을 시켜 잘 말아서 보관토록 하였다.
교묘하게도 그해 봄에 이상할 정도로 땔감이 부족하게 되었다. 주인이 거지가 남겨둔 거적을 가지고 와서 장조림을 하는 땔감으로 삼았다. 어린 일꾼이 그 거적을 아궁이에 넣자 갑자기 고기향이 사방으로 퍼져 나와 주위 사람들이 군침을 흘렸다.
모두가 이상하다 생각하였다. 혹시 그 거지가 전설에 나오는 팔선 중 한 명, 거지 행세를 하는 철괴리(鐵拐李)가 아니었던가 싶었다. 그가 잠을 잤던 거적도 분명 평범하지 않을 것이고. 그런 생각이 들자 곧바로 아궁이 속에 아직 다 타지 않은 거적을 끄집어내어 잘 보관하였다.
이후 장조림을 할 때마다 거적에서 짚 한 가닥을 뽑아내어 아궁이의 불쏘시개로 썼다. 효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때부터 그 음식점에서 만든 장조림이 유명해졌고 장사가 번창하였다.
고객을 불러오려고 점주는 원래 이름인 ‘도영재’를 ‘육고천’으로 바꿨다. 나중에 경쟁적으로 소주에 ‘육고천’이라는 상호를 가진 조제식품점이 생겨났다. 그렇게 ‘육고천’은 유명한 맛있는 고기를 파는 음식점으로 강남 지역에 이름을 떨쳤다.
신비한 거지, 신기한 거적이 맛있고 좋은 음식, 미식에 전기적인 색채를 덧붙였다. 미식에 대한 인류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 약자를 경시하거나 싼 물건을 무시하지 말라는 민속 미학 의식도 반영돼 있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는가? 설 전후의 연말연시 시기 등 특정 환경 아래서 거지는 불길한 징조로 여길 뿐 아니라 거적조차도 흉물로 변했다.
당대 이상은(李商隱)의 『의산잡찬(義山雜纂)』 「불상(不祥)」 중에 ‘거적자리’가 하나를 차지한다. 멀리 『의례(儀禮)』에 나와 있는 ‘침점침괴(寢苫枕塊)’란 거적자리를 깔고 흙덩이를 베개 삼아 눕는 것으로 거상의 상복의 예로 보았다. 게다가 짚은 천지지간 만물 중에 천한 것이요 거지는 세간 중에 천민에 속했다.
좋고 맛있는 미식을 원천이 천한 물건, 천민에 억지로 갖다 붙였다. 사회심리 중 ‘천한 것이 아름답다’거나 ‘아름다움은 미천한 것에서 나온다’는 말에도 미학적 의미가 담겨있다. 민속 미학 심리의 이중성이다. 모순인 듯하지만 ‘아름다움’과 ‘천함’을 겸용하는 특징을 가진 미학심리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