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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어머니 홀로 100세 ... 얼마나 외로우실까

 

교회 할머니가 하늘로 가셨다. 1921년 3월 13일에 이 땅에 왔으니, 한 세기가 넘는 삶의 여정을 완주하신 셈이다. 100년을 살아도 우리 인생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이슬처럼 순간이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발인예배에서, 80세 아들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눈을 감는다. 어느덧 어머니를 닮아버린 딸들은, 한없이 눈물을 흘린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하며 영정을 품어 안은 장손도 고개를 숙인다.

 

이만하면 호상(好喪)이 아닌가 싶은데, 현실의 장례식에선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을 읊을 수가 없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말은, 사자(死者)의 언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멨다. 2023년 3월 22일 생. 이제는 교회에서 가장 연장자시다. 얼마나 외로우실까. 고향마을에서도 홀로 100세시다. 어느덧 어머니 입에서 ‘부택이 어멍은 102살이랜 호여라’는 말이 사라졌다. 지금쯤은 104세가 더 되셨을 테니..., 어머니 생각에도 그 이상은 무리이신 게다. 다만, 여름 장례식은 피해야지 싶은 바람이 간절해진다. 얼마나 여름에 장례를 치르는 게 힘들었으면, 여름 초상이 좋다는 말이 생겨났을까?

 

올 여름은 유난히 무더위가 극성을 부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20일부터 8월 2일까지 폭염으로 1385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다. 이중에서 18명이 사망했는데, 9명이 논일을 하던 70대 이상 노인들이다. 질병관리청은 ‘온열 사망자가 지난해 6명보다 3배가량 늘었으며, 온열질환자는 29% 증가했다’고 경계경보를 발하고 있다. 특별히 ‘어르신들의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는 현재, 여름은 한창 바캉스 시즌이다.

 

노인들이 얼마나 이 무더위를 잘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성공적인 노화를 연구하는 석세스풀 에이징 연구소(SARI: Successful Ageing Research Institute)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무더위 사망이 전체의 45%에 달한다. 노인들은 신체가 기온 변화에 천천히 반응해 갈증반사작용 능력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항상 수분을 충분히 보충해, 몸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참고로, 온열질환은 뜨거운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어 두통·어지러움·근육경련·피로감·의식저하 등이 나타나는 급성질환이다. 심할 경우 열사병과 열 탈진에 이르게 되는데, 매우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다.

 

사실, 여름은 벼나 콩, 조, 옥수수, 고구마 등 농작물을 위한 계절이다. 하룻밤 사이에도 눈에 띌 만큼 쑥쑥, 훌쩍훌쩍, 보란듯이 자란다. 그래서 농부들은 비지땀을 흘리며 숨을 헉헉 거리면서도 땡볕을 견뎌낸다. 추석이 다가올 즈음까지 마치 누구네 밭의 깨들이 가장 잘 자라나 경쟁하듯 커간다.

 

깨는 부가가치가 높은 만큼 김을 매다가 조금만 건드려도 꺾어지고 만다. 그러니 불안스럽게 조춤 앉아서 행여 밟을새라 부서질새라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태풍이나 장마에는 오죽할 건가. 그래서 나는 깨보다 조를 좋아한다. 조밭의 김을 맬 때는 엉덩이를 깔고 앉아도 별반 문제가 없다. 이튿날이면 언제 그랬냐 싶게 고개를 쳐들고, 바람부는 언덕밭에서도 휘바람을 불며 일어서는 체질이니까. 그래도 깨는 오곡 중 여왕이다. 추석이 될 즈음이면 가장 먼저 수확되어 돈이 되고 기쁨이 된다. 비싸게 군 만큼 제값을 하니, 밉지 않은 작물이다.

 

특히 여름철의 노동은 시간, 강도, 휴식 등의 주의를 요한다. 일사병에 걸리지 않고 한 여름을 무사히 보내려면 근면과 함께 절제와 인내가 필요하다. 이른 새벽에 밭으로 나가서 일찌감치 일을 시작하는 대신 여름의 노동시간은 정오 전에 쉬는 시간으로 넘어가야 한다.

 

통상 열시쯤이 되면 겨드랑이가 끈적거리면서 땀이 배어나기 시작해, 11시쯤 이르러서는 등이 젖도록 온 몸이 땀투성이가 된다. 지열이 올라오면서 숨을 턱턱 막아대고 이마에서 솟아난 땀이 눈썹을 타고 내려와 시야를 뿌옇게 흐려놓는다. 12시가 가까워지면 그야말로 비오듯 땀이 쏟아져내려 정강이가 미끈거리고, 등가죽이 벗겨지듯 뜨겁게 타오른다. 더 이상 숨을 쉬기가 곤란한 지경이 되고, 얼굴도 여름볕에 데워져서 벌겋게 익는다.

 

오죽하면 김종두시인께서 ‘제주여인’을 떠올리면서, ‘불벹 더위에 나앉앙, 혼나절 지신검질 매당 보믄, 4.3소태 때 죽은 아방 생각남니께’라고 읊으셨을까. 여름철의 노동이란 얼마나 지치고, 버겁고, 죽고 싶을 만큼 힘든 것인지....차라리 죽고 싶은 제주여인의 여름이여!

 

사실, 세계보건기구(WHO)는 ‘21세기에 지구인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최대 요인’으로 폭염을 지목하고 있다. 최근들어서는 태풍이나 호우보다 폭염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통계청이 2011년〜2019년 동안 집계한 폭염 사망자 수는 총 493명으로, 태풍과 호우에 의한 인명피해보다 3.6배가량 많은 편이다.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폭염을 일컬어 ‘보이지 않는 살인자’라 부른다. 거센 비바람을 과시하는 태풍에 비해 폭염은 눈에 띄지 않으므로 무시하기 쉽지만, 그래서 더 무서운 거다.

 

지난해 제주도는 93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해 전국대비 5.9%를 기록했다. 인구비중이 1.3%인데, 10만명당 신고환자수는 13.7명으로, 전국 최고다. 65세 이상 노년층이 27%를 차지하는데, 80세 이상이 6.4명으로 가장 많다. 곰퍼츠 법칙에 따르면 성장기가 끝난 사람은 나이를 먹을 때마다 사망 확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특히 50세 이후에는 더 가파르게 증가해 100세까지는 우상향 곡선을 그리면서 감소 혹은 유지된다. 다만 100세 이후 생존은 이례적이라서 곰퍼츠 규칙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100세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 보면, 장수의 비결을 묻는 이들이 있다. 단적으로 말해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면 된다. 어머니는 92세에 폐렴, 96세에 대퇴부 골절로 사경을 헤맸다. 평생을 농사와 물질로 살아오신 어머니에게, 위기가 어디 이뿐이었으랴.

 

60세 환갑 때 일이다. 대학을 마치고 은행에 취직해 있던 나는, 어머니의 환갑을 챙겨드릴 수가 있었다. 부산으로 오시라 해서,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네 은행에 모셨다. 친구는 외환금융을 보니까 시간이 한가했고, 나는 주택부금을 보느라 눈코뜰 새가 없었다.

 

일을 마치고 친구에게 가보니, 어머니의 얼굴이 새카맣고 핼쓱했다. 동그마니 앉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팔순 노인처럼 늙고도 작아 보였다. “정옥아, 너희 어머니, 아무래도 어디 좀 편찮으신 것 같아. 이렇게 오셨으니 먼저 병원부터 모시고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라는 친구의 걱정이 가슴을 묵직하게 울렸다. 내가 보기에도 어머니가 너무 까맣고 말라 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머니는 부여에 있는 언니에게 가보고 싶어 했다. 환갑 잔치보다 그곳에 있는 유명한 기도원에 가서 쉬고 싶다는 거였다. 요즘들어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먹은 것도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면서.... 그러고 보니, 제주도에 없는 기차를 타고, 시외버스를 타고서 육지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어머니는 열차나 버스에는 별 관심이 없으신 듯, 피곤한 얼굴로 여정 내내 눈을 감고 계셨다.

 

기도원은 사람들로 가득차서 붐볐다. 주로 병을 고치러 온, 고단하고 가난한 분들이 많았다. 다행히 언니가 원장님과 가근하게 지내고 있어서, 어머니는 소원대로 안수기도를 받을 수 있었다. 원장님이 이곳저곳을 만지며 기도하는데, 가슴부위에만 이르면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다. ‘위암이 깊다’는 말씀과 함께 원장님의 기도와 안수가 간절하였다.

 

어머니의 믿음과 원장님의 정성이 통하였을까? 안수기도가 끝나자, 어머니가 ‘편안하다’시며 얼굴을 피셨다. 어쨌든, 그 후로 어머니는 건강해지셨다. 아버지는 ‘환갑여행 덕분’이라 하시며, ‘딸들 덕분, 하늘의 은혜’라며 기뻐하셨다. 참, 이상도 하시지. 아버지는 2남7녀, 딸 많은 현실을 조금도 서운해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당신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아내도 딸에게 맡기셨다.

 

어쩌다가 오늘도 내 글은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오직 내 진심은, 어머니가 올 여름을 무사히 넘기시고, 100세 인생의 충만한 가을을 맞으셨으면 하는 거다. 가을 바람이 서늘해지고 감귤이 노랗게 익어갈 즈음, 귤림추색(橘林秋色)의 제주 풍경을 만끽하시면서, 이제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래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해보는 마음다.

 

아, 우리 어머니, 이 여름이 무사하시도록, “해님아, 제발 고개 좀 숙여 다오, 바람아, 부디 어깨 펴고 시원하게 불어와 다오!” 생명은 결국 하늘의 은혜이려니..., 인생은 나 홀로 걷는 길이 아니지 않는가.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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