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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허태행씨는 어디 가시니?" ... 항상 찾는 그 이름, 남편

어머니가 백 세를 넘기면서부터 ‘이번이 어머니의 마지막 명절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되었다. 102세가 되신 올해는 추석을 준비하면서부터 노천명 시인의 ‘장날’이 떠올랐다.

 

‘대추 밤을 돈 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루 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준다고 울었다.

 

절편 같은 반달이 싸리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방울이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차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1938년도에 출간된 노천명 시인의 첫 시집 ‘산호림’에 나오는 시다. ‘돈 사야’라는 말은 충청도 방언으로 ‘내다 팔아 돈을 만들어야’라는 뜻이라고 배웠던 국어 시간이 생각난다.

 

이십 리를 걸어야 하는 외진 마을에서 음력 11일에 열리는 열하룻장을 보기 위해 새벽같이 떠나는 아버지와 대추를 안 준다고 우는 막내딸은, 우리들 어린 시절의 서정이다. 저녁 무렵에 떠오르는 달을 송편에 비유한 시인의 마음 또한 추석을 준비하는 마을 사람들의 애틋한 정서를 담고 있다.

 

저녁 어스름이 먼저 몰려오고 아버지가 장에서 돌아올 즈음, 하루 종일 아버지를 기다리던 이쁜이는 정작 잠이 들어버렸는지. 나귀방울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서 쏜살같이 달려가는 삽살개가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가난한 살림에 달빛이 비쳐 들어 모두의 가슴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저녁, 이쁜이는 아버지가 사다 주신 꽃신을 얼싸안고 밤새 은하수 길을 꿈결처럼 걸었으려니....

 

올 추석에도 송편을 빚었다. 명절이 되면 증손자까지 모여드는 대가족을 위해 어머니께서 나름 정해놓은 기본이다. 주로 가까이에 사는 언니와 내가 빚지만, 어머니가 제일 열심이시다. 명절 식사가 끝나고 돌아갈 채비를 할 즈음, 송편 봉지를 하나씩 챙겨주시는 어머니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받아 드는 손들도 즐겁지만, 건내는 어머니의 얼굴이 가장 기쁘다.

 

어머니의 송편에는 특별한 맛이 있단다. 순수한 쌀떡이라 쫄깃거리고, 팥이나 깨로 가득 채운 속이 알찬 데다, 참기름을 반들반들 발라줘서 예쁘고 고소하고 오래 간단다. 저마다 엄지척을 하면서 ‘우리 할머니 솜씨 최고!’라는데, 눈길은 누구 봉지가 더 큰 지를 살펴보는 기색이다.

 

하지만 올해는 송편을 빚지 않으셨다. 언니가 쌀가루를 커다란 낭푼에 쏟아붓고서 “어머니, 물을 얼마나 부으민 좋을지 잘 보십서, 예! 송편은 반죽이 반이랜 허지 않읍디강?”이라고 소리쳐도 별 관심이 없으시다. “니 모음대로 허라!”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도 기운이 빠져 있다. 언니와 내가 송편을 빚고 쪄내느라 동동걸음을 치는 동안, 어머니는 한가로이 창밖을 바라보시며 집 타령을 하신다.

 

“우리 집은 남향이난 잘도 꽃들도 하영 피었져, 이! 니네 아방이 왕 봐시민 참 좋댄 헐 건디.... 집은 남향이라사 된댄 허멍, 아방은 알동네영 기정목에 우리집을 두 번 지슬 때마다 다 남으로 창을 내신예....”라는 목소리에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런데, “허태행씨는 어디 가시니? 나영 굳짝 일을 곹이 해신디(나와 늘 일을 같이 했는데)....”라고 하시며 아버지를 찾으신다.

 

미국에서 돌아가시자 장례를 마치고 나와 함께 한국으로 오신 어머니가,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생기면 늘 두리번 거리면서 아버지가 어디 계신지 찾아보는 눈치다. 돌아오신 지가 어언 22년이다.

 

명절이 되자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음식을 먹기 전에 감사 예배를 드린다. 다함께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집 즐거운 동산이라....’고 찬송을 부른다. 우리집 18번 곡이다.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 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는 구절에서 언니들이 눈가를 훔친다. 어쩌면 어머니와의 마지막 명절을 예감하는 탓이리라.

 

예배를 마치고 밥상을 차리자 어머니께서 할 말씀을 하신다. “우리 아방은 큰 목시(목수)고 이 어멍도 부지런허난, 놈보다는 잘 먹으라 이! 이추룩 골고루 잘 먹어사 헌다!”라고. ‘우리 아버지가 목수셨던가?’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큰 언니가 얼른 맞받아서 거든다. “맞수다, 어머니! 아버지가 혼자 한라산에서 큰 나무들 베어 오고, 동 동네 살던 집 서까래 뜯어다가, 어머니영 우리가 다 모다들언 집을 지어수게.” 그러자 어머니 옆에 앉은 넷째 딸이 얼른 어머니를 감싸 안는다. “맞수다, 어머니! 이추룩 잘 먹는 거, 다 어머니 덕분이우다. 이 옥돔, 전복, 한치, 갈비, 돼지고기, 쇠고기, 부침, 나물, 묵, 미역국.... 다 어머니 이시난 지거찌게(기쁜 마음으로) 만들언 가져와수게.” 그러자 다섯째 딸도 한 마디 거든다. “우리 다 어머니 닮앙 부지런허난, 놈 부럽지 안 허게 막 잘 먹으멍 잘 살암수게. 경 허난, 어머니도 오늘은 하영 하영 드십서 예!” “알았져, 고맙다들. 경 헌디 허태행씨는 죽어신가 살아신가? 전화를 해볼 수가 어서....” 모두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은 듯, 멍 하니 어머니를 바라본다. 우리 어머니는 늘 아버지가 그리우시구나. 저렇게 남편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그리워하며 어디 갔을까, 이제 오려나 기다리시니....

 

 

다행히 102세 어머니는 1살 아기와 같은 데가 있다. 언니가 옥돔을 밥숟갈 위에 올려드리자 정색을 하고서 맛있게 드신다. ‘어디서 싱싱한 도미가 생겨서 쇠고기 대신 생선을 넣었다’는 다섯째 언니의 미역국이 또 어머니의 구미를 당기는 듯. 어머니는 스스로 숟가락을 들어서 이것저것 비린내 나는 것들을 골라 드신다. 대포마을이 어촌이라서인지, 해녀 출신이라서 그런지, 어머니는 비린내 나는 반찬만 있으면 밥을 드시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래저래 화기애애해진 식탁 사이로 아이들의 숟가락도 활기차게 움직인다. 돌을 넘긴 다윤이와 6개월이 지난 시찬이가 명절 분위기를 더욱 돋운다. 그 부드럽게 몽클거리면서 달콤한 젖내를 풍기는 아가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어머니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리라. 더욱이 두 녀석은 자기들 어머니의 뱃속에다 이미 동생을 예약해 두고 있다지 않는가.

 

2남7녀를 둔 어머니 슬하에서 몇 명의 자손들이 태어났는지 헤아리려 보려니 열 손가락이 턱 없이 모자라다. 백지를 가져다가 가계도를 그리며 숫자를 헤아려 보니 얼추 82명이다. ‘지금처럼 어머니가 식사를 잘 하시면 내년 추석도 끄떡 없겠다’는 큰 언니의 얼굴 위로 지난날의 애환이 그림자처럼 스 쳐간다 . (102세 증조할머니와 1살 시찬이의 첫만남) (가족사진, 2024년도 추석)

 

 

명절이 지난 후로 어머니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스스로 숟가락을 들어서 직접 식사를 하시는 거다. 식탁에 앉혀 드리면, 가만히 밥 주기를 기다리던 분이다. 한 살 아기가 따로 없다. 옥돔을 구워 드리면 얼른 손으로 뜯어서 허겁지겁 입으로 가져가신다. 그만큼 좋아하는 반찬인 게다.

 

하지만 수저 사용을 잊어버린 듯 해서 마음이 저리다. 당신은 ‘젓가락질을 할 수 있다’는 걸 은근히 자랑하던 분이 아니신가. ‘구린질 춘자 어멍은 딸을 육지로 시집 보내신디, 잔칫날 젓가락질을 못 해연 배 아픈 채 허멍 굶엉 왔젠 호여라’하시며, 이거 보라는 듯 젓가락으로 이 반찬 저 반찬을 들어올리시곤 하셨으니....

 

명절 연휴가 지난 오늘, 어머니는 점심이 가까운 시간까지 주무시고 계신다. 직장을 은퇴하고서 어머니의 요양보호사를 자처하며 함께 지내온 지 2년 반이 지나간다. 요양원의 주간보호에서 ‘더 이상 감당이 어렵다’는 어머니를 집에서, 소위 재가복지를 시작할 때는 3~4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다. 99세 노인이 아파서 자주 병원에 가야 하니, 누구라도 ‘여명이 오래 남지 않았다’고 여길만 하였다. 하지만 삶에 대한 의지가 워낙 강하신 어머니는 습관적으로 ‘살려줍서’라고 중얼거리신다. 아마도 간절한 기도이시리라.

 

가끔은 무슨 중요한 일을 놓치고 허송세월을 하는 듯 하고, 이러다가 내 인생이 폭망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어느덧 나도 어머니와 함께 노인이 되어 있다. 이따금 내 손을 붙잡고서, “이 어멍 무사 이추룩 오래 살멍 니를 조들렴신고(괴롭게 하는가)....”라며 미안해 하신다. 하지만 사실인 즉은, 그게 아니다. 어머니가 계셔서 내가 실업자가 아니라 ‘요양보호사’란 직업군에 속한 근로자가 되어 있다. 어머니 덕분이다.

 

이제 가을이다.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하다. 그 무서운 여름도 이겨내셨으니, 어머니가 그 이름 성춘(成春)처럼 내년 봄에도 아름다운 인생의 꽃 피우시길 기도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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