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2020년 9월 방송된 KBS 요양병원 고발 리포트의 한 장면이다.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해져서 요양병원에 입원하기로 한 날 아침, 할아버지는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가족들과 함께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 흐른다. 가족들이 노인을 돌보기 어려워 끝이 뻔히 보이는데도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을 선택하는 현대판 고려장’의 모습이다.
“죽으러 가는 기분이야. 동네 사람들 중에 요양병원 갔다가 돌아온 사람, 아무도 없어.”라며 눈을 감는 할아버지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진다.
서울에 사는 이 모 할머니(82·여)는 6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했고,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할머니는 병세가 악화되어 여기에서 5년 반 동안 지내다가 최근 들어 비용이 저렴한 다른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제는 거동이 불가능하고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와상환자'가 되었다. 요양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할머니는 이제 삶을 포기하신 듯, 밤이나 낮이나 주무시기만 하신다.
이 할머니처럼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5년 이상을 보내다 숨진 노인이 10년간(2007-2016)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양병원·요양원 이용자 11만여 명의 평균 이용 기간은 614일(약 20개월)로 집계됐다. 요양병원에서 347일, 요양원에서 267일을 보냈다.
요양시설(요양원)에 입소하려면 노인장기요양등급 1~2급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요양병원에 입원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이 기간 동안 1인당 요양병원·요양원에서 지낸 기간이 가장 긴 지역은 제주도다.
일인당 평균 이용기간이 791일이다. 제주지역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변화 추계를 보면 2017년 14.17%, 2019년 14.96%, 2020년 15.74%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5년에는 전체 인구의 20%가 노인일 것으로 예측된다.
2020년 기준, 도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 10만1813명 중 치매 환자 수는 1만1474명으로, 치매환자 유병율이 전국 평균(10.335)보다 높은 11.27%이다. 성별로는 남성 4027명, 여성 7447명으로, 할머니들의 치매환자 비율이 할아버지들보다 훨씬 높다. 치매 유병률은 2015년 10.32%에서 2017년 10.75%, 2019년 11.21%, 2020년 11.27% 등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 10명당 1명 이상이 치매환자인 것으로 집계된다. 보통 ‘늙어서 노망이 났다’고 하는 알츠하이머 형이 전체의 76.45%이고, 혈관성 8.49%, 기타 15.03%이다.
참고로, 노인장기요양보호법에 따라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건강보험공단은 65살 이상 또는 65살 미만 노인성 질환 대상자 중 52개 항목을 방문 조사해, 1~5등급까지 장기요양 등급을 부여한다. 등급을 받은 노인이 요양원에 입소하면, 정부는 소득과 등급에 따라 장기요양급여의 80~100%를 지원한다.
한겨레신문이 ‘대한민국 요양보고서’를 특집으로 다루기 위해, 담당기자가 직접 요양보호시설에 취업을 하였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3개월 동안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공부를 했고, 240 시간의 교육을 거쳐 경기지역의 요양보호소에서 한 달 동안 근무를 하였다.
장기요양보험이 제공하는 요양서비스 실태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면서 밝히기 위한 목적이었다. ‘내부자가 아니면 요양원의 민낯을 볼 수 없었다. 가족들마저도 낮 시간만 면회가 가능했다. CCTV도 사회복지사의 협조 없이는 볼 수 없는 탓에 내부자가 돼야 했다’는 것이 기자의 고백이다.
그녀의 보고서에 의하면,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들의 사연은 각자가 다르지만, 요양원에 들어오는 순간 바깥 세계와 단절되는 건 모두가 같다. 면회와 외출엔 아무런 제한이 없지만, 찾아오는 이도 나가는 이도 거의 없다. 노인 27명 가운데 1~2명만이 가족이 일주일에 1~2번 찾아와 10분 남짓 머물다 간다. 나머지 노인들은 명절에만 겨우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요양원에 자발적으로 입소한 옥순 할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기자가 근무하는 한 달 동안 여섯 남매 중 아무도 요양원을 찾지 않았다.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기도 했다. “나는 보행기가 없으면 못 서. 친구들은 굽 있는 신발을 신고 또각또각 다니는데, 난 보행기 끌고 가라고? 그런 모습 안 보이려고….” 요양원에 오기 전 교회 권사였던 옥순 할머니는 2박3일로 놀러 가자는 교회 친구들에게 ‘요양원장이 외박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가장 슬픈 사연은 벽지에 있는 꽃그림을 ‘하느님’이라고 여기는 와상 상태의 치매 할머니다. 할머니가 얼마나 ‘하느님’을 어루만졌으면, 벽지가 저렇게 다 해졌으랴.
종일 누워 지내는 할머니에게 ‘하느님’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대상이리라. 할머니는 퇴근하는 기자를 붙잡고 “혼자 두고 가지 말라”며 울부짖기도 하였단다.
실은 코로나19가 덥치기 전에는 토요일마다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들을 방문해서 이야기도 나누고 예배도 드리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할머니들은 비교적 말씀도 잘하시고 안색도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식사 시간이 되면, 다 같이 거실복도에 모여서 똑같은 앞치마를 두르고 거의 같은 짧은 머리를 하고서 표정 없는 시선으로 밥을 기다렸다. 그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집단적이어서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기자의 표현대로라면 요양원이란 ‘많은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한 곳에 가두거나 모아 넣는 곳’, ‘오직 죽어야만 퇴소할 수 있는 수용소’와 같다. 참 끔찍한 관찰이지만, ‘환자영양식을 먹는 노인들의 대변은 양·색깔·묽기까지 정확히 일치해, 노인 수용소의 공동생활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멸시켜 대변 색깔마저 같은 집단으로 만들었다’는 기자의 고백이, 어느 정도 상상이 가능한 실상이었다. 요양원 나름의 다양한 이유들, 시간이 흐르면서 정착된 최선책이란 이유도 있겠지만 말이다.
사실 현대판 고려장이나 간병 살인으로 상징되는 노인 돌봄의 실패는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다. 1955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이 되기 시작했으니,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다.
2024년 노인 수가 1000만 명을 넘고, 2040년엔 국민 3명 중 1명이 노인인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 장년층인 베이비 붐 세대가 현대판 고려장을 겪지 않으려면, 그리고 지금 청년들이 부모를 돌봐야 하는 ‘돌봄 독박’에서 벗어나려면, 노인 돌봄 체계를 지금 당장 개혁해야만 한다. 외국의 경험에 비춰보면 노인 돌봄 체계를 개혁하는데 대개 20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노인의 5가지 소망 중 첫 번째는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요양병원·요양원’이 아닌, 집에서 임종하는 것이라 한다. 적어도 호스피스 완화 의료를 통해 삶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인간적인 환경에서 말이다. 둘째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사는 것, 셋째, 사는 날까지 중병에 걸리지 않는 것, 넷째, 대소변을 혼자서 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며칠 아프고 난 후 자는 잠에 죽는 것이다.
백 살이라 하지 못하지만 백수를 바라는 숨겨진 소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사실은 나도 그와 같은 기도를 한다. ‘우리 어머니, 부디 소원하는 대로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와서 2∼3일 잠깐 누웠다가, 하늘에서 부르시면 감사히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임종의 복을 주소서’라고.
그러고 보니, 1960년생인 나에게도 요양원은 그다지 먼 곳에 있지 않다. 언젠가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때가 되면, 선택의 여지없이 요양원으로 들어가야만 하리라.
‘기어 들어가도 제 집이 최고’라고 하듯이 자신의 집만큼 편안한 곳이 없는데……. 하는 수 없이 요양원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미국처럼 1인실을 사용할 수 있다면 견딜 만 할 텐데……. 우리나라의 요양시설은 대부분이 4인실 이상이다. 선진국들은 1인실을 만들어서 개인의 사생활, 인간적인 삶의 최소한을 유지해주고 있다.
아! 그런데, 우리들의 요양원은 정녕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일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