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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어머니가 100년을 살아내셨다 (2)

 

우리 어머니의 100세는 만 나이가 아니라서 대통령의 지팡이를 기대할 순 없는 노릇. 어떻게 하면 청려장처럼 깜짝 선물을 어머니에게 전해드릴 수 있을까?

 

3월이 되면서부터 시작된 이 고민은, 막내딸이 자기 손으로 생신상을 차리고 싶다는 말로써 일거에 해결됐다. ‘어머니의 생신축하 현수막을 아파트 입구에 내걸면 어떨는지... 백세라면 오가는 사람들도 축하의 미소를 보내주지 않을까요?’라는 아이디어와 함께.

 

그래, 어머니의 이름이 김성춘(金成春)이니, 봄을 이루는 새싹과 햇살, 때늦은 유채꽃과 벚꽃들도 축복의 퍼레이드를 펼쳐줄거야! 우리는 모두 막내의 제안에 기립박수로 환호했다.

 

동생이 디자인한 사진 속에서 어머니는 엘리자베스 여왕보다 더 행복한 웃음으로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바라보신다. 오, 딸들이 무색하도록 저리도 고우신 어머니의 백세 미소라니!

 

어머니가 100년을 살아내셔서 가장 기쁜 자식은 누구일까? 아마도 막내이리라. 오래전, 오십을 훌쩍 넘긴 큰언니가 어머니에게 떼를 쓰는 것을 보면서 내심 부러워한 적이 있다. 아, 내가 언니 나이쯤 되었을 때도 어머니가 저렇게 언덕이 되어줄 수 있을까?

 

첫째인 큰언니와 일곱째인 나 사이에는 14년의 터울이 있다. 막내도 어쩌면 ‘어머니가 오래 사시니 언니들은 좋겠다!’는 부러움을 가졌을 게다. 게다가 유독 막내에게 당당하신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렸는지도 모를 일.

 

‘다른 딸들은 먹고 사는게 힘들어서 고생 고생시키고 큰 공부도 못시켰는데..., 막내는 손수 대학공부를 시켰다’고 공공연히 자랑하시는 어머니. 실제로 어머니의 주장은 공치사가 아니다. 헌옷 물림, 보리밭 검질, 애기좀수질도 나까지였다. 새 옷도 내 차례에 이르면 어느새 헌옷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딸, 딸을 낳고나서 세 번째에 아들을 낳으셨다. 그리고는 딸, 딸, 딸, 딸을 내리 낳으셨는데... 이 연속선상의 네 번째가 공교롭게도 나였던 것이다.

 

“어머니, 날 언제 납디강? 저녁이우꽈, 아침이우꽈, 아니민 밭에 갔단 낮에 나수광?”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 어머니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으신다. 잘 모르겠단다. 아마도 밭에 갔다 와서 저녁에 낳았을 거라고. 낳고 보니 딸이라기에 얼굴도 보지 않고 윗목에 밀쳐버려 미안하다며.

 

그래도 아버지는 ‘이렇게 예쁜 딸이 살림밑천으로 나왔는데, 얼마나 고마우냐’면서, 옥편을 들쳐가며 이름자를 찾아보더란다. 그토록 심사숙고로 지어진 우리들의 이름은 정열, 정복, 정희, 정숙, 정심, 정옥, 정례로 이어진다.

 

한결같이 아버지 손으로 빚어진 걸작들. 한 배에서 나온 자녀들임을 알게 하면서도 저마다의 개성을 살려 차별화시킨 기술력. 아버지는 2남7녀를 손수 받으셨다.

 

이튿날 아침, 어머니의 해산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모님은, ‘또 딸’이란 소리에 쳐다보지도 않고 곧바로 발길을 돌려버렸다. 세상에! 서러운 동생은 어떡하라고.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려보건대, 네 번째에 딸로 등장한 내가 야속도 하고 서운도 하셨겠다다.

 

그로부터 3년 후, 어머니의 설움이 어느 정도 가라앉을 즈음에 막내딸이 태어났다. 1번부터 7번까지 내리 두 살 터울인데 반해 세 살이나 터울지게 뜸을 들이면서 말이다. 어쩌면 덤으로 얻은 선물 같았으리라. 더욱이 막내는 예쁘기도 하고, 방실방실 잘도 웃고, 재롱도 그만이었단다.

 

지금도 여전히 쾌활하고 붙임성이 많은데다 낙천적이고 마음씨도 착하다. 게다가 아이들을 좋아해서 아동 돌봄이 직업이다 보니, 나이가 들러붙지 않아 활기차고 명랑하다.

 

아동센터의 어린이들과 놀이를 할 때면 천생 어린 아이가 된다. 노래도 잘하고, 맵시도 있고, 음식솜씨도 좋은 건 금상첨화다.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내 동생은, 내가 갖지 못한 재능과 성품을 풍성하게 안고 태어났다.

 

더욱이 2년 후에는 그렇게도 소원했던 아들이 태어났으니, 그 길을 터놓은 막내딸이 얼마나 예뻤으랴.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머니의 은근한 막내 사랑을 불만하거나 시샘하지 않았다. 아니, 우리들끼리도 ‘막내는 봐주자’는 공감대가 있었다.

 

아들이 태어난 이후 어머니는 태의 문을 닫으시고 한층 더 일의 강도를 격하게 높이셨다. 우리는 눈을 뜨면 밭에 가서 일하다가 시간에 맞춰서 학교로 달려가고, 공부가 끝나면 밭으로 내달려서 어머니를 도왔다. 사실 학교는 공부보다 간판이 목적이었다.

 

어머니는 9명의 자식들을 길러내느라 밤낮 없이 일만 하셨다. 실은 집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이 세상의 어머니들은 잠을 자지 않는 줄 알았다. 저녁에 누울 때도, 아침에 일어나도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 없었으니까.

 

사실 배롱배롱한 별을 보며 밭으로 나가서 어슴푸레한 달빛에도 일을 하였던 게 제주도 어머니들의 삶이었다. 더욱이 어머니는 물질까지 하셨으니 이중고에다, 제비 같이 벌어진 입들이 삼중고를 더하였으리라.

 

죽어라 일을 해도 먹고사는 생활고를 해결해주지 못하던 보리, 유채, 고구마의 서러움이여... 드디어 그 자리에 들어선 밀감나무가 황금 열매의 귤림추색을 자랑할 즈음, 드디어 대학에 들어간 내 동생이 대학나무의 1세대가 되었다. 순전히 타고난 복이었다.

 

어쨌든 전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오롯이 어머니의 백수 상을 차려낸 동생은, 게장을 두 종류나 내놓았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간장게장은 처음 담가보는 솜씨라 맛에 자신이 없더란다. 그래서 확실하게 만들 줄 아는 고추장게장을 하나 더 만들었던 터.

 

어머니를 닮아서 딸들은 간장게장을 게 눈 감추듯 먹어댔다. “아이고 맛있다, 솜씨 좋다, 최고다, 일품이네!”라는 추임새에 맞장구까지 쳐가면서. 어머니의 애타는 심정과 초조한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이구.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계시는 한 게장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는다. 내용에 비해 수고가 너무 많기도 하거니와 먹는 게 번거롭고 거추장스럽기도 하다. 물론 어머니를 위해 아껴두려는 속내가 나의 본심이다.

 

100수 기념 촬영이 끝난 후, 어머니는 갈비·불고기·튀김·전·생선·잡채·떡 등에는 한 눈조차 주지 않고, 오로지 게장만을 공략하셨다. ‘나는 본니가 대깍해서 갈비도 끄떡없다’는 어머니의 이빨은, 그 딱딱한 게장 껍질을 사정없이 부숴댄다. 보란 듯이 실력을 과시하며 어머니를 으쓱케 하는 이빨은, 역시 오복 중에 으뜸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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