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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어머니의 장수비결 10가지 중 한가지 ... 딸

1923년 3월 22일. 어머니의 생신이다. 막내딸 이름을 성춘(成春)이라 지으시면서, 외할아버지는 ‘봄을 이루어라, 봄이 되거라’고 기원하셨을까. 이제 내일 모레면 만 나이로 백 세가 되신다.

이웃들이 묻는다. 어머니의 장수비결이 무엇이냐고. 혹시 집안이 장수하는 가문이냐고..... 아니다. 어머니는 4남2녀의 막내인데, 형제분들 중 가장 오래 사신 경우가 80대 중반이다. 요컨대, 장수혈통은 결코 아니란 얘기다.

그럼, 무엇이 장수의 비결일까? 어머니와 함께 산 지 20년, 같은 방을 쓴 지가 10년 째다. 룸메이트로서 내가 경험하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장수비결을, 10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일, 2) 식사, 3) 병원, 4) 자녀, 5) 기도, 6) 바다, 7) 잠, 8) 딸, 9) 긍지, 10) 감사.

 

 

어머니가 만 백세 생신을 맞았다. 혹여 서울에서 무슨 소식이 오려나? 100세를 맞은 어르신에게 장수 지팡이인 ‘청려장’을 보내준다는데.... 건강과 장수를 상징하는 청려장은 명아주 풀로 만든 지팡이다.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는 임금이 장수 노인에게 청려장을 주는 전통이 있었다 한다.

 

우리 정부는 1993년부터 주민등록상 100세인 노인과 실제 나이가 100세로 검증된 노인에게 청려장을 선물해 왔다. 2018년 10월 2일, 보건복지부는 제22회 노인의 날을 맞이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기념식을 열고, 100세를 맞은 어르신들에게 ‘청려장’을 선물하였다. 그날은 신문들도 장문의 헤드라인을 내걸고 일제히 축하 기사를 게재했다. ‘100세 맞은 1343명에 ‘장수지팡이’ 선물…문 대통령 축하카드도 발송(중앙일보, 2018.10.02.)’이라고.

 

다행히 올 봄과 여름을 잘 보내고 가을까지 무사히 지내면, 우리 어머니에게도 청려장이 소포에 묶여 배달될는지 모르겠다. 때가 지나 도착하더라도, 부디 어머니가 청려장을 받아보셨으면, 좋겠다. 그 지팡이를 짚고서 대한민국의 최남단, 보목마을 섶섬 앞의 올레길을 여한 없이 걸어보셨으면, 참 좋겠다.

 

잔치집에서 돼지고기 한 접시를 보내와도, ‘게무로사 이 늙은이를 혼저 죽어불랜 안해영, 이추룩 먹음직헌 돗괘기를 다 보내시냐?’라며 사나흘은 코삿해지시는데..., 나랏님의 선물이라면 얼마나 더 흐뭇하실까. 적어도 30일, 달이 차고 기우는 시간, 한 달은 더 사시지 않으려나....

 

 

우리의 속 사정을 어떻게 알았을까? 한 방송국이 찾아와서는 어머니를 ‘특종’이라 추켜세우며 나흘 동안 찍었다. 그들이 방송한 ‘특종세상’에서 어머니를 보았다는 이들이, 여기저기에서 안부를 물어왔다. 심지어 미국에 사는 며느리도 전화를 걸어와서는 ‘어머니가 어쩜 그렇게 정정하시고, 말씀도 잘 하시냐’고 효심을 드러냈다.

 

이 정도면 과연 특종이겠다 싶을 만큼, 방송의 힘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게다가 어디에서 소문을 들었는지, 제주에 있는 한 방송국에서도 찾아와서 하루 종일 어머니를 찍었다.

 

그들이 자랑하는 장수 프로그램인 ‘보물섬’에 보물로 등장시킬만 하다는 거였다. 생일 케이크까지 들고 와서 ‘생일 축하합니다’를 신바람나게 불러주니, 이왕 사람으로 살아갈 거면 장수의 섬에서 태어나 오래 오래 살고 볼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2022년 1월말 기준, 제주도의 백 세 이상 인구는 231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34명이 백살을 넘기고 있다. 이중에서 여자는 222명, 남자는 9명으로, 여성 노인이 96%를 차지한다. 2022년 7월 기준, 제주도의 장수도(85세 이상 초고령 노인 인구 비율)는 12.6%로, 17개 시·도 중 4번째를 달리고 있다.

 

더 놀라운 일은, 백세 노인이 무엇을 알랴 싶어서 함부로 이야기 한 것들이 걸리고 민망할 정도로, 방송에 나온 어머니가 당당하고 총명하신 거였다. 아, 우리 어머니가 백세의 치매노인이 아니라, 그리운 어머니의 딸이고, 처녀시절을 간직한 여인이며, 남편이 보고싶은 아내이자, 딸들의 입장을 헤아리는 어른이시구나....

 

이쯤에서 어머니의 장수비결을 하나 더 소개하자면, ‘니 덕분이여!’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딸’을 소개하고 싶다. 어머니는 2남 7녀를 두셨다. 아니, 첫 딸을 돌이 되기 전, 폐렴으로 잃었으니 8녀를 두었던 셈이다. 그러니까 딸, 딸, 딸을 낳은 다음 아들을 낳고서, 다시 딸, 딸, 딸, 딸, 딸을 내리 5번 낳은 후, 마침내 아들을 낳은 것이다.

 

첫번째 딸이야 살림 밑천이니 그런대로 괜찮았던 것 같다. 그 어려운 살림에도 우리 마을 최초로 제주시에 있는 여자고등학교로 보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어서 둘째 딸도 언니가 다니는 여고로 진학시키면서, 덤으로 아들을 제주시의 중학교로 함께 보냈다.

 

그런데 셋째 딸을 고등학교로 보낼 즈음부터 가계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아버지의 교육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여고를 졸업해서 취직한 언니들이 동생을 돌봐주는 방식으로 계획한 아버지의 교육시스템이 그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졸업하자마자 육지로 올라간 두 딸이, 그 치열한 서울살이에서 돈을 벌어 동생들을 공부시키기가 생각보다 만만찮았던 것이다.

 

게다가 아들은 대학을 보냈으니,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에는, 우리집에 학생이 6명이나 되었다. 아침이면 돈을 달라는 아이들이 미안해서, 어머니는 어두컴컴한 동새벽에 이미 밭으로 나가, 땀흘리는 노동에다 시름을 쏟았다.

 

넷째 딸부터는 제주시는 커녕 고등학교 진학 자체가 어려울 정도였다. 눈치가 빠른 다섯째 딸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어머니와 함께 밤바르를 다녔다. 밤바르란 겨울 밤, 온 사방이 허옇게 눈으로 뒤덮인 시간에 썰물진 바다로 나가서 소라와 해삼 등을 잡는 일이다. 겨울에는 썰물이 한 없이 빠져 나가서, 그야말로 바당 한 쪽이 다 마를 정도로 밑바닥을 드러냈다.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횃불은 두 세 시간을 족히 견딜만큼 수명이 길었다. 어머니와 언니, 내가 들고 간 비닐 포대가 묵직할 정도로 물건을 많이 잡을 수 있었다(어머니는 지금도 그 때를 회상하면서, 아버지에게 은근히 섭섭함을 드러내신다. 썰물 때를 짐작해서 몇 시에 일어나라고 깨우시기는 하면서도, 한 번도 동행하지는 않으셨다고. 얼마나 추운지, 얼마나 무서운지를 한 번만이라도 함께 겪어 보았으면 싶더라고....).

 

아침밥을 먹은 후, 어머니가 챙겨주신 물건을 들고서, 어머니가 거래를 터놓은 식당과 여관으로 향하면, 언니는 얼른 내 짐을 뺏어서 자기 등에 짊어지고 씩씩하게 앞장섰다. 그런 언니가 얼마나 든든하고, 얼마나 아팠던지....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찌감치 육지로 나가서 취직을 한 언니는, 월급의 대부분을 집으로 송금했다.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일상, 노동, 살림, 형편을 잘 아는 언니는, 대학생이 된 내게 남포동 구두빵에서 랜드로바 구두를 사주었다. 자기는 국제시장에서 말표 운동화를 사 신으면서 말이다. ‘걷는 데는 운동화가 최고’라며 해맑게 웃던 언니의 그 표정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해서, 울컥하니 설움이 복바친다. 가슴이 시리고 저리다.

 

 

환갑을 넘기신 부모님이 미국에 사는 아들의 요청으로 이민을 떠나던 날, 언니는 남겨진 밀감밭을 도맡아서 친정집으로 들어 왔다. 남겨진 살림을 간수하고 과수원이 정리될 때까지, 시댁인 서귀포와 중문을 종종걸음 치면서 얼마나 애간장을 졸였을까. 얼마나 가슴이 절어들었을까.

 

그런 언니여서 믿어라 하셨을까? 아버지는 당신의 하나 뿐인 산소를 언니에게 맡기셨다. ‘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할머니 산소에 가서 잡풀을 뽑는다’는 언니는, 무시로 산소에 가서 잔디를 보살폈다. 아버지에게 언니는, 일곱 아들이 부럽지 않는 딸 중의 딸이었다.

 

언젠가 이웃 마을에 사는 어르신이, “우리는 아들이 일곱이난, 밭갈쇠가 일곱이라. 필요헐 땐 언제든지 고라. 우선적으로 빌려드릴꺼난...”이라고 농담을 하셨다. 은근히 통혼을 암시하는 프로포즈 같건만은,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속상하고 미안해서 한라산만 쳐다봤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나중에 살짜기 해주신 말씀이 그렇게도 심금을 울리더란다. “걱정 말아게, 두고 봐. 똘 가진 부모가 큰 소리 칠 날이 올 거난. 동네 청년들이 우리 밭 갈아주켄 줄 서멍 기다릴 거난, 그때꼬지 오래만 살아게. 난 우리 똘들만 보민 열 아들이 부럽지 안 해여. 어디 호나 호나 자세히 솔펴 봐! 자네를 닮아서 얼마나 아꼽고, 부지런허고, 야무지고, 똑똑헌가!!”

 

아버지의 그 확신처럼, 언니는 과연 열 아들 몫을 다하는 금쪽같은 딸이었다. 백세 어머니의 생신상을 두 차례(방송용, 가족용)나 차리면서도 조금도 싫은 내색이 없는 효심의 결정판. 어머니가 시어머니와 시할머니를 모시면서 감당해 낸 역할을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지켜보는 언니가 있었으니....

 

어머니의 인생 3막이 이렇게 해피앤딩이 되도록 갖가지 배경이 되어 주는 언니가 있어, 오늘도 어머니의 행복한 하루가 부담 없이 시작된다. 아, 어머니의 서러움을 무색케 하는 딸들의 저 웃음이여!

 

“어머니, 대포 부택이 어멍은 102살까지 사셨다는데...., 어머니는 더도 덜도 막고, 103살까지만 건강하게 살아줍서, 예!!!”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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