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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무사안일(無事安逸) ... 어제와 같은 오늘, 백세 노인의 최고 복

100세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 보면, 소소한 일에도 특별한 의미를 두게 된다. 까마귀가 유난스레 까악까악 거리거나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이게 뭐지?’ 싶은 생각에 마음이 심란해진다. 어머니가 혼잣말로 ‘살암시민 끝이 이실테주(살다보면 끝이 있겠지)’라고 하시거나, 정색을 하고서 ‘정옥아, 고맙다, 이!’라고 하실 때에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그러므로 무사안일(無事安逸), 국어사전의 의미 그대로 ‘아무런 일이 없이 편안하고 한가함’이 아침의 기도가 된다. 저녁이 되어서, ‘오늘도 무사안일로 지나가서 다행이구나’라고 중얼거릴 때, 깊은 안도와 평안이 스며든다. 백세 노인에게는 어제와 같이 오늘도 이어지는 게 최고의 복이다

 

그런데 뜻밖의 전화가 걸려 왔다. 처음에는 나를 찾더니, 이런저런 특성상 맞다 싶으니까 어머니에 대해 묻는다. 나는 서론이고, 어머니가 본론인 게다. ‘무슨 일이냐’라고 직설적으로 묻자, ‘뿌리 찾기’를 하고 있단다. 아무래도 우리 할머니가 당신들이 찾는 이모 할머니 같다고....

 

아프리카에 고향을 둔 아메리카의 킨타쿤테(‘뿌리(Roots)’라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우리들에게도 무슨 사연이 있는가 싶어서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 얼마 있다가 집에 당도한 이들은 80대 후반의 어머니와 50대 중반의 아들이었다.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듣고 보니, 아무래도 허교수님네가 우리집의 뿌리와 연결된 것 같다’는 아들의 얼굴에, 진지함과 기대감이 묻어 있다.

 

우리 할머니 김현성님은 호근리에서 대포리로 시집을 오셨다. 대포마을에서 제법 산다는 종가집의 맞며느리로, 밭도 하나 갖고 오셨단다. 때 맞춰 아들을 낳고 오순도순 살아가던 때, 일본행 바람이 불었다. 빚을 갚거나 밭을 사거나 하는 금전적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일본으로 가면 목돈을 벌 수 있다는 열풍이었다. 그게 공장 일인지 탄광 노동인지 모르지만, 할아버지는 목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그리고 얼마를 벌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귀국하는 길에 부둣가에서 인생의 불상사(scandal)를 만났다. 한 처자가 물건을 팔고 있는데, 첫 눈에 반하고 만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대포마을 출신이 아닌가. 동향인에 대한 반가움이 타국생활의 외로움에 ‘인연’이란 착각을 불러일으켰을까. 그렇게 만난 처자와 할아버지는 중문으로 올라가 새살림을 차렸고, 졸지에 조강지처인 우리 할머니는 버려지고 말았다.

 

할머니는 혼자서 남의 집을 얻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허씨 가문의 장손이라 할아버지가 무척 아끼는 손자였다. 아들도 빼앗기고 혼자 된 할머니는 누에도 치고 남의 일도 하면서 어렵게 열심히 사셨던 것 같다. 아주 어렸을 적 기억에, 할머니 집에 가면 누에고치를 삶은 번데기를 주셨는데, 벌레 같아서 도무지 집어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에게 미안해져서 가슴 한 구석으로 찬바람이 들어온다. 아버지가 2남7녀를 두었으므로, 입을 덜어준다고, 할머니는 손녀를 한 명씩 데려다가 같이 살았다. 특히 둘째 언니는 할머니와 오래 살아서, 오히려 집에 오면 낯설어서 겉돌기도 했단다. 하기야 2남7녀가 17평짜리 초가집에 소, 돼지, 말과 함께 공간을 나누어 살았으니, 얼마나 먹는 것, 자는 게 치열했으랴. 다행히 나는 7번째로 태어난 덕분에 8번 여동생과 함께 부모님과 한 방에서 지냈다. 그것은 정말 특권이었다. 아버지 등에 검딱지처럼 붙어서 자고 있으면, 두려움도 아쉬움도 전혀 없었다.

 

동네에서 제사떡을 나눠주면(그 당시는 제사를 지낸 후 이웃간에 떡을 나눠 먹었다), 아버지가 밭에서 돌아오실 때까지 떡 차롱을 높다란 궤 위에다 올려 놓고 기다렸다. 아버지는 당신의 손과 떡차롱을 번갈아 보면서 누구 떡이 큰가를 주시하는 아이들에게 공평에 공평을 기하였다. 크다고 많이 주거나 작다고 적게 주는 법 없이, 콧등하게(균등하게) 나눠주셨다.

 

아, 그 침떡, 곤떡, 빵떡이 입에 들어가서 침과 함께 만들어내는 창조적 달콤함이여! 동생은 자기 떡을 아껴 먹는다고 비밀 장소에 숨겨놓곤 했는데, 이튿날이 되면 영락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우리 집에 머리 검은 쥐가 있어서 어린 것의 코 묻은 떡을 밤 사이에 먹어버렸다’고 큰소리를 치셨다. 하지만 누구를 지목한 꾸중이 아니라서 동생도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법을 배웠다. ‘먼저 먹는 게 임자’란 사실을 우리는 일찌감치 터득했고, 적자생존의 법칙이 12명 대가족의 식탁에서는 자연스럽게 학습되었다.

 

이즈음에는 장손을 찾아 온 증조할머니도 함께 살았는데, 어디 계신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셨다. 체구가 아주 작으셔서 언니들과 한 방을 쓰셨는데, 90이 넘은 연세에도 부지런하셔서 고구마를 수확할 때는 한 몫을 하셨다. 아, 그 혼잡함과 더불어 삶의 생동감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식탁의 추억이여! 아, 오늘도 이 글은 어김없이 삼천포로 빠지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을 때부터는 할머니가 우리집으로 오셨다. 치매를 하셔서 걸음을 잘 걷지 못하셨다. 이제 생각해보면 파킨슨병의 일종으로, 보행 동결(걷기 시작할 때, 걷는 도중, 걷다가 돌 때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아 발걸음을 옮기지 못함) 증세였던 것 같다. 나중에는 인지기능 저하와 배변·수면 등의 장애로 독방을 쓰셔야만 하였다. 저녁이 되면 밭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할머니의 이부자리를 구덕에 짊어지고 바다로 가서, 솟구치는 용천수에다 막개(더러운 빨랫감을 두드려서 구정물을 빼내는 방망이)를 힘차게 두드려서 빨았다. 할머니는 당신의 방 안이 행동반경이었고, 그 공간에서 삶의 생리적 욕구를 모두 해결하셨다. 아버지가 참으로 가슴아파했던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된다.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할머니가 노랗게 익은 탱자열매를 까먹고 있었다. 아이쿠, 큰일 났다. 밀감 나무 묘목을 만들 탱자열매를 다 먹어버리다니... 당시는 탱자나무 씨앗을 심어서 어느 정도 묘목이 자라면 밀감나무 순과 접붙이기를 해서 과수원을 만들었다. 우리는 탱자나무 열매를 따기 위해 한라산 중산간의 들판을 해메곤 하였다. 그토록 어렵게 수집된 탱자 열매이니, 할머니의 체면이나 형편은 아랑곳 없었다. 한숨에 밭으로 달려가서, “아버지, 큰일 나수다! 할머니가 우리가 따 논 개탕지 열매를 다 먹어부럼수다.”라고 외쳤다. 아버지는 알아들으셨는지 모르셨는지 가타부타 말이 없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개탕지가 문제이기보다 어머니의 치매가 몹시도 가슴 아프고, 슬프셨으리라.

 

그런데 얼마 있다가 중학생인 언니가 해맑은 얼굴로 달려와서는, 노란 개탕지를 보여주면서 자랑을 하는 거였다. “아버지, 할머니가 이거 나 먹으랜 줍디다. ‘산물’이랜 헌 건디, 막 맛이 좋아 마씸. 아버지도 하나 먹어봅써!”. 그러자, 아버지가 다소 밝아지신 얼굴로 자조지종을 물으셨다. 내용인 즉, 호근리에 사는 할머니의 언니들이 치매로 고생하는 동생을 방문해서 산물을 주고 간 것이었다.

 

그 산물이 새콤달콤 맛있으니까, 할머니는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먹어보라’고 권한 거였다. 치매 할머니가 풍기는 시큼한 냄새가 싫은 나는,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개탕지로 오인한 것이다. 나보다 철이 든 언니는 할머니가 권하는 산물을 받아서 먹어보았고, 결국은 나의 보고가 오보로 들통난 것이었다. 아! 이후로 나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산물이 주는 아픈 기억으로 인해 고개를 숙이곤 하였다.

 

바로 그 할머니의 언니 되는 큰할머니의 딸이, 아들을 통해 뿌리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 어쩌면 당신의 어머니가 보고 싶은 마음에, 우리 어머니를 통해서라도 그 동생의 후손들을 찾아보고 싶으신 게 아니었을까. 촌수를 잘 헤아리기 어려우므로, 일단 고모님이라 부르기로 하고, 우리 할머니에게 잘못한 그 날의 개탕지 사건을 이실직고 하였다. 그렇게 털어놓는 사이, 할머니의 고단하고, 외롭고, 쓰라렸던 생애가 다시금 눈시울을 적셨다. 고모님은 ‘그 산물나무가 아직도 우리집에 있다’라고 하시면서, 내 손을 붙잡고 ‘괜찮다’고 오히려 위로하셨다. ‘그때는 우리네 삶이 너무 무지하고, 가난하고, 척박하였다’고. 그리고 ‘너는 너무 어린 아이였다’라고.

 

문제는, 어머니가 그 고모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거였다. ‘10년 전에 찾아왔을 때는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라시며 안타까워하시는 고모님은, 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서 어머니 손에 고이 쥐어주셨다. “고맙습니다!”라며 인사를 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여전히 친척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다. 17년을 미국에서 이민자로 사신 어머니는, 잘 모르는 이들에겐 표준말로 정중하게 인사하는 습관을 익히셨다.

 

 

고모님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섶섬 앞으로 가서 사진을 찍었다. 혈육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이토록 핏줄찾기에 깊이 애착할까. 할머니의 생애가 다시금 떠올라서 고모님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다시금 눈시울을 적셨다. 사진이 흔들렸을까 봐 고모님을 안아드리면서, 위치를 다시 잡았다. “웃읍서! 김치 랜 고라봅서!”라고 소리치자, 애써서 웃으시는 게 오히려 걱정스런 표정이 되고 말았다.

 

고모님을 보내드리려니, 어머니 생애에는 이제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가슴으로 파도가 싸〜아 하니 밀려들었다. “고모님, 고맙수다! 어머니도 할머니의 삶이 서럽고 아파서 많이 울어수게. 아버지는 정말 어머니에게 효자여수다. 우리 할머니, 호적에는 혼자였지만 12명이 어우러젼 외롭지 않게 살단 가셔수다!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 할머니를 어머니처럼 그리워하는 손녀들도 하고 마씸!”라고 위로를 해드렸다. 고모님 얼굴로 가을 햇살이 반짝이며 파도 소리와 함께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어루만져 주었다.

 

고모님이 다녀가신 후로 며칠간은, 혹시나 우리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싶은 마음 속의 염려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도 당신을 위해 다섯 번째 딸이 만들어 놓은 텃밭의 배추를 바라보면서, “우리 집은 부재여!”라고 탄성을 지르시는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밝고 고와서 안심이다. 게다가 섶섬이 보이는 바닷가 의자에 앉아서 “낭썹 호나 꼬딱 안 허게, 보름 혼 점 어신 날이여!(나뭇잎 하나 까딱 안 하게 바람 한 점 없는 날이여)”라며 웃으시니, 내 마음도 화안하다. ‘낭썹...’ 소리는 어머니가 매우 기분이 좋을 때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탄성이다. 부디 귤림추색의 가을이, 어머니의 겨울나기로 무사히 이어지기를 빌어본다.

 

역시 핏줄은 뿌리로 이어지는 재회와 위로의 선물인가 보다. 오랜만에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며, ‘허태행씨는 나를 두고 어디로 가신고?’라고 중얼거리는 걸 보니, 어머니의 정신이 많이 맑아지신 게다. 이따금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며, ‘저 사름은 누게니?’라고 묻는 어머니. 그 생경스럽던 표정이 오늘은 햇볕을 받아서 밝고도 따사롭다. 아! 어머니의 이 가을이 더 없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되시기를....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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