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하는 소리가 있다. “나, 어떵허난 백살꼬지 살아점신고, 이?” 곰곰이 어머니의 일생을 헤아려 보니, ‘쉬지 않고 일을 해서, 죽음의 위기를 넘겨서, 오래 사시라는 주위의 돌봄이 있어서’로 요약된다.
‘혼자 사는 게 좋다’고 독립을 선언하셨던 어머니가, 어느 날 밤 배게를 안고 우리 방으로 오셨다. ‘혼자 자는 게 무서워서…….’라는 게 이유였다. ‘제주도 할머니들처럼 혼자서 먹고 싶은 거 마음껏 해 먹으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한 지붕 두 살림으로 살아온 지 10년 만의 일이다. 그렇게 딸과 한 방을 쓰면서, 어머니는 10년 가까이를 거뜬히 살아내고 계신다.
‘80대 중반이 평균 수명’이라는 어머니 가계의 유전적 전통이, 막내에 이르러서 그만 깨져버린 셈이다. 목하 100세를 살고 계신 어머니의 장수 비결이, ‘사랑하는 딸과 같이 살아서’라는 형제들의 진단처럼, 나와 같이 살면서 ‘딸을 돌봐주고 딸로부터도 돌봄을 받는다!’는 생각이 어머니로 하여금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사실 ‘외로움이 장수의 적’이라는 연구들이 더러 있기는 하다. 한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내놓은 ‘국내 90세 이상 장수사람들의 분석리포트’에 의하면, 하루 세끼를 규칙적으로 먹고,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경우가 장수인들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식사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느냐’ 또한 중요하다는 얘기다.
요컨대 장수지역의 식사 풍속도는 여러 명이 둘러앉아서 대가족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통계청에 따르면, 어르신 다섯 명 중 한 명은 혼자 살 정도로 우리나라의 독거노인 비율(전체 노인 중 홀로 사는 노인 비율)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노인 빈곤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2021 고령자 통계’에 의하면 가구주 나이가 65세 이상인 고령자 가구가 총 473만2000가구인데, 그 중에서 35.1%인 166만1000가구가 혼자 사는 고령자 1인 가구로 집계된다. 게다가 고령자 1인 가구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문제는 혼자 사는 고령자일수록 건강관리에 소홀하다는 점이다. 2020년도 현재, 독거 노인 중에서 자신의 건강상태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7.1%에 불과하다. 고령자 전체 평균인 24.3%보다 크게 낮은 수치다. 반대로 전체 고령자 10명 중 4명(38.4%)이 자신의 건강이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혼자 사는 고령자는 10명 중 5명(49.5%)이 자신의 건강이 나쁘다고 보는 데서 그 차이를 볼 수 있다.
장수의 비결은 익히 알려져 있듯이 유전자, 건강한 식습관, 운동, 스트레스 없애기, 행복해지기 등 다양한 요인이 열거된다. 최근 들어서는 여기에 곁들여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고 돕는 것’을 추가하는 연구들이 있다.
Sonja Hilbrand 등은, 1990년부터 2009년의 20년 동안 70~103세 사람들 약 500여명을 추적 조사한 끝에, ‘손자손녀들을 이따금씩 돌보고(부모 대신 손자손녀들을 도맡아서 키우는 경우는 제외) 자녀들의 일을 도와주는 등 여전히 누군가의 삶을 돌보고 있는 노인들이 그렇지 않은 노인들에 비해 더 오래 사는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제주도의 어르신들이 대체로 자녀들에게 의존하기보다 움직일 수 있는 한 자녀들을 돕고자 하는 특성이 비교적 높음을 환기시키는 부분이다. 어쩌면 이와 같은 생활 풍습과 전통이 그동안 제주도를 특별한 장수지역으로 자리하게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과 연관하여 ‘배우자, 자녀, 친구, 이웃들과의 친밀한 관계가 수명을 연장한다’는 연구결과 또한 이어지고 있다. 울산대의대 예방의학 교실 강영호 교수팀이 1998년부터 6년간 30세 이상 성인 5437명을 대상으로 조사·연구한 결과를 보면, 미혼자는 기혼자에 비해 사망률이 6배 높다.
미국 시카고대학 노화센터 린다 웨이트 박사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심장병을 앓고 있는 기혼 남성은 건강한 심장을 가진 독신남성보다 4년 정도 더 오래 산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 연구팀이 70세 이상 노인 1,477명을 10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교우관계가 가장 좋은 492명은 하위 492명에 비해 22% 더 장수하는 특성을 보였다.
이상의 연구결과들과 유사한 취지에서, 헬스조선이 노화 연구 권위자들을 통해 일본 오키나와, 미국 캘리포니아, 그리스 이카리아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100세 노인들의 장수 비결 5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부지런해라: 100세 노인들은 공통적으로 항상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아무 활동 없이 방에만 앉아 있으면 신체기능이 급속도로 떨어진다. 움직이지 않으면 근력이 줄어든다. 근력이 줄면 자주 넘어질 뿐 아니라 전반적인 면역기능이 떨어지고 치매가 쉽게 온다.
2. 표현하라: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좋다. '서울 100세인 연구'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90세 이상 노인 88명 중 남성 28%, 여성 48%가 평소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특히 여러 감정 중에서도 분노·슬픔 같은 부정적 증상을 속으로 눌러 넣어서 삭히지 않는 게 중요하다. 실제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서툰 사람일수록 두통, 근육통, 소화불량 등을 호소하는 경향이 높다.
3. 적응하라: 세상이 변하면 그 변화를 궁금하게 여기고, 변화를 받아들이며 그에 따르려고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자극에 적응하려는 시도만으로도 뇌 기능 저하를 막을 수 있다. 예컨대, 인터넷으로 최신 기사를 읽고 스마트폰으로 손주들과 영상통화를 할 중 아는 노인들의 장수확률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더 크게 나타난다.
4. 적절함을 알아라: 적절하다고 여기는 정도에서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 과식, 과음을 피하고 운동도 적절하게 하는 것이 좋다. 특히 노인의 경우 자신에게 맞지 않는 고강도 운동을 하면 효과는커녕 활성산소가 과도하게 생성되어 수명이 단축될 수 있다. 60대 이상이면 체조, 아쿠아로빅, 골프, 가벼운 근력운동 등 중간 정도 강도의 운동을 매일 하는 게 좋다. 활성산소 생성을 촉진하지 않으면서 신진대사와 심폐기능,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5. 어울려라: 코로나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끊임없이 이어가며 어울려야만 한다. 세계의 장수촌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정서적 안정감과 강한 소속감을 느끼는 공동체적 삶을 꾸려간다. 실제 70세 이상 노인 1477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호주 연구에서는 친구관계가 좋은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22%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지할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생물학적으로 두뇌활동과 면역체계가 활성화된다.
이상에서 제시된 요인들 중에서 ‘어울려라’는 항목은 ‘돌봄’을 주고받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스탠퍼드대 면역학과 필립 피조 교수가 미국 의학저널 '자마(JAMA Network)'에 게재한 '21세기 100세 시대의 장수를 위한 처방‘에서도, ’활발하게 교류하라‘는 항목이 특히 눈에 띈다.
미국 공공과학도서관 의학(PLoS Medicine)에 실린 148건의 연구를 메타 분석한 결과, 긍정적인 사회적 관계는 생존율을 50% 증가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반면 사회적 관계가 부족한 사람은 심혈관질환 위험이 29%, 뇌졸중 위험이 32% 더 높았다. 친구와 활발히 교류하면 치매 위험이 낮다는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연구도 있다. 또한 큰 병에 걸리거나 다쳤을 때 좋은 친구는 정신적·경제적으로 큰 힘이 된다. 실제 사회적 유대관계가 좋은 사람들은 암이나 심장병 같은 위중한 병에서 회복될 확률이 높다고 알려졌다.
그러므로 친구나 가족은 물론, 종교 단체 혹은 지역사회 활동을 통해 사회관계를 넓히는 게 바람직하다. 최근 들어 전남대 노화과학연구소가 백세연구로 유명한 서울대 박상철 석좌교수를 주축으로 해서 실시한 ‘건강 백세인의 장수비결’에 의하면, 백세인 2명 중 1명은 주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경로당, 주간보호센터, 이웃집 방문 등으로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며 모임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응답한 백세인은 몸이 불편하거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기회나 상대가 없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이웃들과 어울림을 통해 돌봄을 주고받는 것이 장수에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다.
나의 어머니를 관찰해 보면, 경조사에서 친척이나 친구들이 챙겨 보내는 돼지고기나 떡 등이 ‘장수’를 축복하고 권고하는 촉진제가 된다. 특히 ‘죽어도 교회에 가서 죽겠다’며 100세의 몸을 이끌고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어머니에게, 성도들이 이따금 전해주는 음료수나 과일 등은 매우 효과가 높은 장수식품으로 변한다.
무거운 걸음, 통제 불가능의 기침, 습관적인 침 뱉기, 머리 숙이고 졸기,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기, 드러눕기 등 어머니가 발산하는 부정적인 효과가 엄숙한 예배를 방해하는 문제가 있음에도, 오히려 ‘잘 오셨다, 백세 어르신과 함께 예배드리는 게 자랑이다‘라는 성도들의 반응이 어머니의 엔도르핀을 활성화시킨다. ‘이제는 그만 나오라’ 하지 않고 노인을 환대하고 대접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는 일주일을 다시 잘 버티도록 격려한다.
농장에서 품삯으로 일하시는 권사님이 당신 몫의 블루베리를 소중하게 포장해서 전해주시는 정성, 자신도 노인이면서 어쩌면 당신 드시라고 건네온 음료수 선물세트를 어머니에게 갖다드리는 마음, 맥추감사절 떡을 나누면서 백세어르신이라며 특별히 하나 더 안겨주는 배려 등이 올해의 전반기를 무사히 버텨낼 수 있게 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그리고 친구들의 돌봄. 지난봄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시장에서 전복을 사왔다’는 연미. 비닐봉지에 고이 싸여서 어머니 앞에 놓인 전복을 쓰다듬으며, ‘이 비싼 전복을 게무로사 이 쓸데어신 노인에게 먹어보라 사왔느냐’면서 함박꽃이 되신 어머니. 당신은 50년을 해녀로 살면서 가장 기쁘고 좋았던 일이 ‘전복을 잡았을 때’라고, 전복봉지를 가슴에도 품어보고..., 전복은 많이 잡았지만, ‘내 입에 들어간 적은 없었다’며 봉지를 들춰서 속을 헤아려도 보신다.
어머니가 백 년의 강을 지나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슬픔과 고난, 절망, 위기가 있었으랴만, 그 강을 무사히 지나 강둑에 앉아 있는 지금, ‘그동안 수고하셨다, 잘하셨다, 대단하시다’며 전해드리는 사랑의 손길들이 있어, 지나온 시간의 고통은 모두 흘려보내고, 오롯이 행복하실 수 있으신 게다.
어머니, 부디 받으시는 사랑과 전해주는 사랑을 씨줄날줄 엮어서, 올 여름도 단단히 이겨내 주세요. 우리 어머니, 김성춘 여사님의 백세 만세, 장수 만만세!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