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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어머니의 장수비결: 어째서 100살까지 살아지게 되었을까? (2)

가끔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하는 소리가 있다. “나, 어떵허난 백살꼬지 살아점신고, 이?” 곰곰이 어머니의 일생을 헤아려 보니, ‘쉬지 않고 일을 해서, 죽음의 위기를 넘겨서, 오래 사시라는 주위의 돌봄이 있어서’로 요약된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데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길까? 아마도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헤아려보면, 어머니에게도 수많은 죽음의 위기들이 있었다. 17세부터 육지로 원정물질을 다니면서 60이 넘도록 해녀를 하였으니, 더 말하여 무엇하랴.

 

내 고향 대포마을에서도 물질을 하던 중 익사한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어머니의 조카인 종택이 어멍은 물질하던 중 숨이 다해서 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제이는 물질을 마치고 나오다가 성창에서 발이 미끄러져 익사하였다. 그리고 달문이 삼춘은 ‘물 소굽에서 밥을 해영 먹어사 나오주’라는 소리를 듣는 대상군이었지만, 어느날 물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보목마을도 마찬가지다. 섶섬 앞에서 물질하던 해녀가 지나가던 배의 스쿠루에 걸려서 죽는 사고가 있었고, 태왁만 남긴 채 사라진 해녀가 거센 조류를 따라 지귀도에서 발견되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처럼 바다속은 알 수 없는 위험요인들이 수상하게 얽혀 있는 곳이다. 오죽하면 물질을 일컬어 ‘저승에서 벌어서 이승에서 쓰는 일’이라 하였겠는가.

 

제주도의 통계를 보면, 물질 작업 중 숨진 해녀는 2013년부터 올해 6월까지 최근 10년 간 78명에 이른다. 2017년에는 12명, 작년에는 11명이 숨졌다. 올해 들어서도 벌써 4명이 조업 중 사망했는데, 대부분이 70세 이상이다.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로, 물질하던 중 숨이 모자라서 호흡이 끊긴 것으로 추정된다.

 

해녀들의 세계에서는 물질 중 사고사가 어쩔 수 없는 일, 피할 수 없는 일, 숙명과 같은 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자식이 ‘더 이상 물질하지 마시라’고 말리면, ‘바당에서 죽어져도 모관 아니주(어쩔 수 없지)’라고 시선을 돌리시니 말이다. 어쩌면 물질은 삶 그 자체이자 숙명과 같아서, ‘그만 하겠다’고 해서 그만두어지는 게 아닌 듯도 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90이 넘은 해녀 할머니가 물때만 되면 어김없이 물질을 하시는데, 실은 서귀포에서 버스를 타고 오신다. 아마도 자식들이 물질을 하지 못하도록 시내로 이사를 간 게 아닌가 싶다. 귀도 잘 들리지 않고 걸음도 불안해 보이지만, 바다를 바라보시는 표정은 흐뭇하고 담대하시다. 참으로 알 수 없는 해녀와 바다의 관계여....

 

한편, 어머니는 미국에 있을 때 위암을 수술했고, 자동차에 치여서 공중제비를 당한 후 땅바닥에 내팽겨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지금도 날씨가 궂어지면 온 몸이 쑤신다는데, 60년 간 담당한 고강도의 노동과 과로까지를 감안하면 살아 있는 게 기적이다. 하기야 어머니가 100세에 이르기까지 겪어 온 우여곡절 중 기적이 아닌 일이 어디 있으랴. 그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경우, 예컨대 죽을 병에서 살아난 사례는, 이따금 무용담처럼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약 8년 전 일로 기억된다. 어머니가 독감으로 서귀포의료원에 입원하셨다. 그런데 하루쯤 지나자 더 나빠져서 폐렴이 되어버렸다. 노심초사, 사나흘이 지났을까. 담당의사가 ‘더 이상 가망이 없다’며 임종을 예고하였다.

 

세상에.., 어떻게 사람의 목숨이 이다지도 허망하게 끝날 수 있는가. 92세의 어머니가 버텨내기엔 폐렴이란 놈이 소문처럼 지독하고 집요하였다. 더욱이 어머니는 오랫동안 천식을 앓은 병력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목사님을 모시고 가족들이 모여서 임종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면 촛불이 꺼지듯 눈을 감고 천국으로 가셔야 할 어머니가, 예상처럼 눈을 감지 않으시는 거였다. 오히려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는 모습이, 마치 살려달라는 것처럼 간절하였다. 마침 그 때 담당의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더 이상 가망이 없다 하셔서 이렇게 임종예배를 드렸는데... 그러면 눈을 감고 돌아가셔야 할 분이, 보시다시피 저리도 애처롭게 눈을 뜨고 계시네요.... 만약 선생님의 어머니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의사는 주저주저하다가, 솔직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하였다. “1%의 가능성을 안고 종합병원으로 옮겨보겠어요. 거기에는 호흡기 내과가 있으니...” 그럼, 저희 어머니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마치 죽음과 대결하여 결투를 치루듯, 어머니는 급박하게 앰블런스에 실려서 제주시 종합병원으로 달렸다. 같은 병실에 있던 경험 많은 요양보호사가 어머니를 위한 주의사항을 여러 차례 반복하였다. ‘절대 눈을 감으면, 혹시라도 잠이 들면 안되니까, 끊임없이 깨우면서 가야 한다’라고.

 

앰블런스에 동행한 언니와 나는 제주시 한라병원의 응급실에 도착하기까지 번갈아가면서 어머니를 깨웠다. “어머니 눈 감으민 죽으난, 제발 눈 뜹서 예! 미국에 이신 아들들 생각허멍 눈을 버룽허게 뜹서. 이제 홑썰만 더 가민 되시난, 힘냅써 양! 다 와감시매 제게 눈을 뜹서. 죽을 힘을 다 해영, 제발 눈을 떠줍서게. 경 해사 다시 살아낭 우리영 고치 집으로 갈거 아니우꽈!”라고 소리지르면서.

 

한라병원 응급실을 경유해서 중환자실에 들어간 어머니는, 정말로 기적처럼 사흘만에 위기를 벗어났다.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집으로 생환하였으니,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지성이면 감천, 아니 행운의 여신이란 게 이런 경우일까?

 

그런데 또 한 번의 위기가 닥쳤다. 96세가 되신 어느날, 어머니가 요양원의 주간보호 버스를 타려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별 거 아니려니 하고 요양원에 갔는데, 주저앉아 고통을 호소하였다. 급하게 서귀포의료원으로 갔더니, ‘대퇴부골절’이라 제주시 종합병원으로 가보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대퇴부골절도 치료할 수 없는 서귀포의 열악한 의료환경이라니....

 

한라병원 응급실로 급하게 달려 간 어머니는, 이런 저런 검사 끝에 ‘당장 골절부위에 시멘트를 해서 고정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 등 중대진료로 인한 부작용에 대하여 향후 민형사상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감사한 마음으로 썼다. 정말이지 이렇게 다급한 상황에서도 적시에 대처 가능한 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담당의사가 막 문제의 수술(시술)을 시행하려던 차, 때마침 들른 담당과장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아마도 연로하신 어머니가 시멘트 처치 후 꼼짝말고 있어야 하는 주의사항과 굳어질 때까지의 무한인내를 감당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다행히 과장님은 인공관절 수술 분야에서 병원이 자랑하는 전문가였다. 예리하게 수술하는 모습과 쾌거를 담은 신문기사가 병원 엘리베이터의 보기좋은 곳에 광고처럼 붙어 있었다. 미국정형외과학회에 의하면, 무릎인공관절수술은 전체 의학 수술 중 가장 성공적인 수술법 중 하나로, 그만큼 결과가 좋았다.

 

하지만, 하루를 보내고 이틀을 기다려도 수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침마다 병실을 방문한 과장님은 어머니의 상태를 관찰하고, 간호사는 체온을 측정했다. 수술을 하기에는 체온과 염증수치가 높은 게 문제였다.

 

어머니는 점점 더 다리의 통증을 호소하고, 병실 내의 간병인들은 불행한 사례들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불안해진 나는 아침마다 과장님을 찾아가서, ‘언제 수술이 가능한지, 그냥 시멘트를 했어야 하는 게 아닌지...’라면서 은근한 부탁과 원망, 불만을 토로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지하고 무례한 일이었다.

 

주의깊고 침착해 보이는 과장님의 얼굴에도 긴장과 염려가 스치듯 지나갔다. 오후에도 병실에 들려서 어머니의 상태를 관찰하며 기회를 살피는 것 같더니... 드디어, 체온과 염증수치가 동반 하락한 순간을 포착했다. 곧바로 수술이 진행되었고, 역시 소문처럼 수술 실력이 훌륭하였다.

 

몇 년 전에 실시한 어느 대학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최고의 장수지역은 경기도로, 1천 명당 115명이 100세를 넘겨 '백세인생'을 살고 있다. 의정부를 선두로 부천, 성남, 안양 등 서울 인근 위성도시들이 장수지역 분포도의 중심을 형성한다. 이 지역들의 공통점은 의료기관이 가까워서 뇌출혈 등으로 쓰러졌을 때 치명적 손상을 피할 수 있는, 이른바 '골든타임 30분'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병원 덕분에 사선을 두 번이나 벗어난 어머니는, 이후로 그렇게 심각한 질병에 붙잡히지 않았다. 노인에겐 감기가 만병의 근원이다 싶어서, 찬바람이 분다 싶으면 항상 독감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낙상에는 장사가 없다는 사실을 경험했기에 늘 골절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을 다한다. 그리고 ‘몸을 조심히 다루고 밥을 잘 먹어야 산다’는 딸의 주의사항을 매우 잘 의식하신다.

 

어쩌면 ‘오래 살고 싶다’는 삶의 욕구가 강하신 게 장수에는 제 1의 비결인 듯도 하다. 밤 중에도 몸이 불편해지면, “정옥아, 나 살려도라!”고 온 힘을 다해 소리치시니... ‘혹시나 치매가 생겨서 이 세상 것들은 다 잊어먹어도, 절대로 딸의 이름 만큼은 잊어버리면 안된다’고 강조했더니, 그야말로 세상 없어도 철저히 지키시는 우리 어머니.

 

그래, 지금 정도라면, 어머니도 100세를 넘어서 102세, 아니 105세까지라도 살아내실 것 같다. 육체와 정신의 건강이 동행해준다면, 오래오래 살아주시는 게 자녀들에게도 축복이요 행운이 아닌가. 이 자리를 빌어서 어머니의 건강한 장수와 인생 끝날의 해피앤딩을 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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