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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8)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서시(西施)의 생졸 연대는 알 수 없다. 전국시대 월(越)나라 사람으로 중국 고대 미인 중의 하나로 꼽힌다. 월나라가 오(吳)나라에 패한 후 서시는 미인계의 일환으로 오왕 부차(夫差)에게 보내졌다고 한다. 오나라에서 서시는 총명함과 아름다움으로 부차를 미혹시켰고 월왕 구천(勾踐)이 오나라를 멸망시키는데 공헌을 했다고 전한다.

 

水光瀲灩晴方好(수광렴염청방호) 물빛은 빛나고 맑아 가득 찰랑이니 좋고
山色空濛雨亦奇(산색공몽우역기) 가는 비 오니 산색 또한 기이하다.
欲把西湖比西子(욕파서호비서자) 서호를 서시에 비교한다면
淡裝濃抹總相宜(담장농말총상의) 옅은 화장이든 짙은 화장이든 다 아름답구나.
(湖上初晴後雨(음호상초청후우) - 소식(蘇軾))

 

서호를 얘기한다면 ‘담장농말(淡裝濃抹)’이라는 구절은 흐릴 때나 맑은 때나 다 좋다는 뜻이 될 것이고, 느낌으로 얘기하자면 슬프거나 기쁘거나 상관없이 다 좋다는 의미가 될 터이다. 그만큼 서시는 서호처럼 예쁘다는 얘기가 된다.

 

월왕 구천이 복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을 한 끈기와 총명함이 우선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서시의 아름다움을 이용하여 오왕 부차를 미혹시킨 미인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모와 재주가 출중한 서시가 오나라 궁정을 돌아다니면서 얻은 정보를 구천에게 제공함으로써 오나라를 멸망시키는데 공헌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기이한 것은 오왕 부차가 멸망하고 구천이 득세할 때 서시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서시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

 

 

서시의 실종에 대해 민간에서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성도가 무너지고 오나라가 멸망할 때 서시의 연인인 범려(范蠡)가 궁궐 심처로 급히 들어와 서시를 데리고 물길 따라 운무가 감도는 태호(太湖)로 갔다고 한다. 나중에 둘은 결혼하고 정치 투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멀리 사라졌다고 한다. 범려는 도주공(陶朱公)으로 이름을 바꿔 장사로 치부하였고 속세에서 가장 화려한 생활을 하면서 수명을 다할 때까지 살았다고 한다. 명나라의 희곡작가 양진어(梁辰魚)가 『완사기』를 지었는데 춘추말기 오월 전쟁의 이야기를 쓰면서 서시와 범려의 애정 이야기를 줄거리로 삼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월나라 대부 범려가 아름다운 봄날 따스한 햇살 아래 민가로 나들이를 갔다. 저라(苎萝)산 아래에 이르렀을 때 옷을 빨고 있는 서시를 만났다. 자태가 곱고 용모가 아름다운 서시에 반해 백년가약을 맺었다. 오래지 않아 오나라 왕 부차가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월나라로 쳐들어왔다. 월나라는 대패하여 월왕 구천이 포로가 되었고 범려도 인질이 되어 월왕 부부와 함께 오나라에서 노예 생활을 하게 되면서 서시와의 혼인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3년이 지나 오왕 부차는 구천의 부부와 범려를 풀어줬다. 구천이 귀국 후 와신상담하며 10년 동안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원수를 갚고 설욕할 결심을 하였다.

 

그는 범려가 제안한 미인계를 쓰기로 하였다. 서시는 범려의 애국심에 감동을 받았다. 미인계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박명함을 안타까워하며 오나라로 가는 것에 동의하였다. 부차가 서시를 보자 크게 기뻐하며 총애하였다. 그는 스스로 월나라를 패퇴시켰으니 더 이상 천하에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월나라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오나라는 월나라에 의해 멸망한다. 구천이 논공행상을 하려할 때 범려는 벼슬을 버리고 서시와 함께 배를 타고 떠나 이름을 바꾸고 은거하였다.

 

 

선량한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보담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터. 그래서 사람들은 서시와 범려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아름답게 끝을 맺는다. 그러나 이런 해피엔딩은 역사적 사실과는 정반대다.

 

동한의 『오월춘추․구천벌오외전』에 범려의 도망 과정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오나라가 월나라 구천에 의해 멸망한 이후 지혜롭고 계략이 넘치는 범려는 자신의 처지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한다. 구천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었다. 월나라 대부 문종(文種)에게 “날아가는 새를 다 잡고나면 아무리 좋은 활도 수장된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도 잡혀 먹힌다. 월왕의 사람됨이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으나 즐거움을 같이 나누지는 않는다.”라고 편지를 써서 문종에게 빨리 월왕을 벗어나라고 권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승리에 도취돼 있는 월왕에게서 떠나겠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은 과거에 나라를 찾기 위해 오랫동안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대업이 성취됐으니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겠다고. 그러나 월왕은 허락하지 않는다. 협박도 회유도 하며 “네가 남는다면 우리 둘이 함께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 네가 조정을 떠나면 네 처는 생명을 보전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범려는 구천의 음험함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시기를 받아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임도 잘 알고 있었다. 숙고 끝에 결국 떠나기로 결심을 하고 의연하게 구천에게 말한다. “제 자신도 보전하지 못하는데 어찌 처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미 떠나기로 뜻을 굳혔습니다.” 그날 범려는 처자의 안위를 생각하지도 않고 일엽편주에 몸을 맡기고 표연히 떠났다. 이렇게 본다면 범려는 홀몸으로 떠난 것이 된다. 처자조차도 못 데리고 떠났는데 어찌 서시를 데리고 떠날 수 있었겠는가?

 

범려가 시원스레 떠났다면 서시는 어떻게 되었을까? 후인들은 당시 상황을 근거로 강물에 몸을 날려 자살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런 관점은 『묵자․친사』편에 처음 보인다. “서시가 물에 빠졌으니 그 아름다움이여.”라고 하였는데 이는 서시가 강물에 빠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서시의 죽음은 그의 아름다움 때문이라는 말이 된다.

 

당시 상황을 보면 서시의 결말은 좋지 않았을 것이다. 월나라 군대가 오나라 도성을 공략할 때 오왕 부차는 후퇴하면서 서시를 데려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며 승리의 그날을 고대했던 서시가 같이 떠날 리는 만무했다. 그냥 궁궐에 남았다. 군대를 되돌릴 때 월왕 구천은 자태가 아름답고 예쁘며 탁월한 공로도 있는 서시를 데리고 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구천의 부인은 잔혹한 여인이었다. 구천이 서시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는 것을 본 부인은 암암리에 이를 갈며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천이 서시의 곁을 떠나지 않자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군대가 배를 타고 남으로 귀환하는 어느 날, 구천의 부인은 구천에게 말했다. “적국의 신민이 강남 쪽에서 대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환영하는 신민에게 왕의 예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구천은 부인의 말이 합당하다 여겨 환영하는 신민들을 향해 뱃머리에 올라섰다. 이때 구천의 부인은 서시를 선미로 불러 병사들로 하여금 큰 돌에 묶게 하고는 강물 속으로 던져 버렸다. 구천이 알아차리고 행방을 묻자 구천의 부인은 얼굴을 붉히며 남편에게 말을 했다. “망국의 요물을 어찌 남겨두려 하십니까?” 절세가인이었던 서시의 아름다운 옥체는 이렇게 출렁이는 파도와 함께 사라졌다.

 

오나라에 있을 때 서시는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자기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성공하여 자신의 나라로 개선할 때 목숨을 잃는 재앙을 당했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당당했던 왕 구천은 끝내 자신을 위해 봉사했던 서시를 보호하지 못했다. 그런 매정하고 의리가 없는 남자를 위한 서시의 애국은 가치 없는 일이 돼 버렸다. 서시가 선녀같이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막아내지 못했음이니. 그녀의 아름다움과 총명함은 주인인 구천에게는 한갓 이용 도구에 불과 했던 것이다.

 

 

엄격하고 진실하다고 평가를 받는 『사기』중 「월왕구천세가」「화식열전」에는 범려가 보이나 서시에 대해서는 기술하지 않았다. 당연히 범려와 서시의 사랑 이야기도 들어있지 않다. 사마천은 어째서 당시 정치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여인에 대해 이름조차 남기지 않았을까? 이해하기 어렵다. 일세가인인 서시의 끝말이 분분하다. 정말 물에 빠져 죽었을까? 아니면 범려와 함께 자연에 묻혀 행복하게 살았을까? 아니면 다른 이야기가 존재할까?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29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중국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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