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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81)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 한족 사찰에는 일반적으로 네 분의 보살을 모신다. 문수사리(文殊師利), 보현(普賢), 지장(地藏), 관세음(觀世音)이다. 불경에서는 관세음을 대자대비 보살이라고 한다. 고난에 시달리는 백천만억 중생이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그 이름을 염송하기만 하면 “관세음보살이 즉시 그 소리를 듣고 해탈할 수 있다”는 데서 연유했다. 일반인의 마음속에 보살은 거의 남성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유독 관음보살만은 중국에서 ‘娘娘(낭랑, 여신)’으로 불린다. 왜 그럴까? ‘娘娘’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원칙대로라면 ‘낭랑’이라 불리기 때문에 분명 여인이어야 한다. 그러나 불가 경전의 소개에 따르면 관음은 육관음, 칠관음, 삼십삼관음 등 총체적 명칭 외에 불교 중 현교(顯敎)의 일파에서는 아미타불의 제자로 여기고 있으며 밀교(密敎) 일파에서는 아미타불의 좌우에서 모시는 협사(脇士)로 여기고 있다. ‘제자’든 ‘협사’든 모두 여성에 대한 칭호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관점에서는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관음상은 대략 남북조시대에 시작돼 당나라 이후에 성행했다고 보고 있다.

 

 

 

 

중국 고대 불교 벽화를 고찰해 보면 현재까지 전해오는 돈황(敦煌) 벽화에는 북위(北魏)시기 관음불상이 용모가 수려하고 강건한 체격을 가지고 있어 여성의 색채가 보이지 않는다. 초당(初唐)에서 성당(盛唐)까지의 벽화에 불상이 점차 ‘한화(漢化)’가 되기 시작한다. 얇고 투명한 옷을 걸치고 풍만하며 둥근 얼굴로 변한다. 단정하고 복스러운 모습을 갖추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불상을 새길 때 여성미가 비교적 많은 특징을 첨가했으나 그때의 관음도 여전히 완전한 여인상은 아니었다.

 

북송(北宋) 『태평광기』에 한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당나라 관원의 처가 까닭 없이 귀신에 홀려 인사불성이 됐다. 환관이 관음보살에게 보우해주십사 기도를 드렸다. 마침내 처는 밤에 꿈속에서 비구를 만나자 씻은 듯이 나았다. 즉 당나라 사람들은 관세음보살은 남성으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 송나라 승려 법상(法常)이 그린 『관음』에는 큰 귀에 얼굴이 풍만하고 수염이 나 있다. 분명 남자 모습이다.

 

물론 역대 관음이 여성이라는 기록은 적지 않다. 『편년동신』의 기록에 의하면 남산 도선(道宣) 선사는 관음의 연기에 관한 문제를 천신에게 물었는데 천신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과거 몇 겁 전에 장엄(莊嚴)이 있었다. 그 부인이 보응(寶應)으로 ‘묘안(妙顔)’, ‘묘음(妙音)’, ‘묘선(妙善)’ 3명의 딸을 낳았는데 관음보살은 바로 그중의 ‘묘선’ 공주라 했다.

 

송나라 이후 관음상은 대부분 여인상이다. 송나라 승려 수애(壽涯) 선사는 『영어람관음』을 지었는데 관음의 복식을 묘사하면서 여성 복장의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여인설’을 극렬히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명나라 문학비평가 호응린(胡應麟)은 관음이 여인이라는 설을 생각할 가치도 없다고 했다. 그는 『장악위담』에서 “현재 관음을 조각하거나 그리는 사람들 중 여인 모습으로 만들지 않는 사람이 없다. 『선화화보』를 보면 당송(唐宋) 유명 인사들이 관음을 묘사했는데 모두 부인의 관복을 입히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당대 이전의 관음상은 모두 여성 형상이 아니었고 원대(元代) 승려들의 식견이 짧아 선녀와 같이 여기기 시작했으니 웃기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호응린의 관점은 근원을 캐보지 않고 단지 불상만을 보고 말한 것일 따름이다.

 

고대에 관음의 성별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아직까지 확실하게 해결하지 못한 미스터리다. 그렇다면 당시의 문학, 조각, 회화 작품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을까? 신화소설 『서유기』속 관음보살은 말을 할 때마다 ‘빈승(貧僧)’, ‘제자’라고 하여 분명 남자 말투다. 그런데 다른 부분에서 오승은(吳承恩)은 관음을 “옥면천생희,주순일점홍(玉面天生喜,朱脣一點紅)”이라고 묘사한다. 빨간 입술이요 ‘일점홍’이라 그냥 사전적으로 풀면 푸른 잎 가운데 한 송이의 꽃이 피어 있다는 뜻인데 많은 남자들 사이에 끼어 있는 오직 하나 뿐인 여자인 셈이다. 12회에 관음이 현성하는 것을 묘사하면서 “높고 높은 하늘 은하 속에서 여진인(女眞人)이 나타나니”라고 했다. 이렇게 관음은 남성이기도 하고 여성이기도 한 모습으로 형상화됐다. 오승은의 묘사에는 한 번은 남성이 되고 한 번은 여성이 되는 남자의 말투에 여성의 매력이 충만해 있다. 이런 ‘모호’한 기교는 예술가들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였다.

 

근인 마태(馬駘)는 『화보(畵寶)』에서 관음을 그리는 것은 여래(如來)를 그릴 때와 같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관음의 성별의 특징을 여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긍정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그린 관음은 여성의 형상이다.

 

 

 

관음보살의 법력이 광대무변한 것을 보면 남성적 기개가 넘친다. 그러면서도 대자대비하고 중생을 널리 제도하는 것을 보면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다. 그렇다면 그 형상을 남자로 나타내기도 무리가 있고 여성으로만 나타내기도 부족함이 있는 것이 아니던가. 중생을 고난에서 구해 낼 힘이 있고 자애로움을 갖춘 보살이기에 남성의 모습이면 어떻고 여성의 모습이면 어떤가. 그러나 관음을 여성상으로 묘사한 불상과 불화들이 아직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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