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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36)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이천여 년 전 중국의 서남부 소수민족과 월남,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 청동 악기인 동고(銅鼓)가 유행하였다. 죽은 이의 넋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사자라고 생각하였으며 부귀를 상징하였다. 군중을 불러 모으는 위력을 지녔고 왕권의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풍부한 문화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 동고(銅鼓)는 중국 서남부와 동남아시아 각국을 연구하는 고고학자, 민속학자, 역사학자들에게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동고의 고향은 어디인가가 현지 그들이 연구하는 이슈다.

 

중국 서남부 소수민족 지역에 동고의 기원에 관한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져 온다. 묘족(苗族 : 먀오족)의 암벽 동굴 속의 촌락에 모자가 살고 있었다. 늙은 어머니는 두 눈이 멀어 아들 구로동(邱老同)이 땔나무를 해 장사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구로동이 땔나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강가에 다다랐는데 갑자기 비가 억수로 쏟아지며 강물이 불었다. 구로동은 연로하고 눈이 먼 노모가 걱정이 돼 위험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려 하였다. 물이 깊고 물살이 너무 셌다. 중간쯤에도 이르지 못하고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어둠 속에서 늙은 어머니를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는 게 여한이구나 생각하였다. 그런데 강을 순찰하던 야차(夜叉)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용궁에 가게 되었다.

 

용왕을 만나자 구로동은 자신의 가정 형편을 말하고 늙은 어머니를 모실 수 있게 세상으로 돌려보내 주기를 간청하였다. 용왕은 구로동의 청빈함과 효심에 감동을 받아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너는 참 보기 드문 효자이니 내가 기념으로 동고를 선물하마.”라며 동고를 주었다. 구로동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동고를 받아들고 노모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촌락에서 명절 때나 축제 때나 결혼이나 장례식 때에 구로동은 용왕이 준 동고를 치며 축하를 하였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아름다운지 백리 밖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각 촌락에서는 장인을 불러 본을 뜬 후 같은 동고를 만들게 하였다. 그런데 모양은 비슷하게 만들었으나 소리는 아무도 똑 같이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전설은 아름답지만 이러한 민간전설은 과학적 논증을 필요로 한다. 1879년 독일 학자 Meyer과 Foix는 『동남아의 동고』에서 동고가 캄보디아에서 기원했다고 하였다. 1900년 네덜란드 학자 DeGroot는 『동인도 군도와 동남아사아 대륙 동고고』에서 광동(廣東) 서남 만인(蠻人)이 창조했다고 하였고 1932년 프랑스 학자 V.Goloubew는 『금속고의 기원과 유포』에서 월남 북부에서 동고가 기원하였다고 봤으며 프랑스 학자 Terrien de Lacoup ria는 동고가 인도에서 기원하였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동고의 기원은 어디일까? 고대 동고 분포지역의 주요 국가와 중국 내 출토지역을 보면 알 수 있다.

 

1961년 5월 월남 해변에서 출토된 동고의 연대는 지금부터 2480±100년 전이다. 1964년 말레이시아에서 출토된 동고의 연대는 지금부터 2500±1.05년 전이다. 1997년 광서(廣西)에서 출토된 동고의 연대는 전국시대 말기로 약 기원전 3세기다. 1978년 귀주(貴州)에서 출토된 동고는 서한 말기로 약 기원전 1세기다. 1975년 사천(四川)에서 출토된 동고는 서한 말기로 약 기원전 1세기다. 1975년 운남(雲南)에서 출토된 동고는 지금부터 2640±90년 전의 것으로 기원전 690±90년이나 된다. 각지에서 출토된 연대 수치를 비교해보면 운남에서 출토된 동고가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리고 출토된 지역도 운남 지역 전체에 걸쳐 있다.

 

 

지금도 중국 서부의 소수민족은 동고를 보물로 여기고 있다. 동고는 중대한 회합이나 명절 행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묘족은 명절, 경축일, 제사 때만 동고를 친다. 묘족 촌락에는 동고평(坪)이 설치돼 있어 중요한 명절에는 동고를 ‘모시고’ 나와 평(坪) 중앙에 걸어놓고 신령(귀와 신)에게 제사를 지낸 후에야 동고를 치고 춤을 춘다. 동고를 이용한 춤은 묘족이 추는 춤의 일종으로 제사를 지내는 성격을 유지하고 있는 역사가 오래된 춤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듬은 평온하고 느리며 장중하다.

 

포의(布衣)족도 동고를 무척 숭배한다. 동고는 포의족들에게 진귀한 악기일 뿐만 아니라 신령스런 신의 기물이기도 하다. 포의족들은 사람과 하늘, 땅, 신 사이에서 소통하는 ‘신의 사자’다. 그래서 안순(安順) 일대의 포의족 촌락에는 ‘암․수’의 동고가 있다. 그 뜻은 동고도 사람과 같이 ‘자웅이 결합’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자자손손이 평안하고 영원히 포의족들과 함께 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포의족 촌락마다 동고가 있는데 평상시에는 검은 포로 싸서 대들보에 매달이 두었다가 명절 때나 제사, 장례식 때 사용한다. 동고를 사용할 때는 벼이삭을 이용하여 ‘모시고’ 오는데 동고를 운반할 때는 검은 포로 확실하게 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을 건널 때 동고가 물속으로 뛰어든다고 한다.

 

포의족은 ‘넌신(설)’ 때에는 반드시 종고를 친다. 섣달 30일에 ‘모시는’ 곳도 있고 정월 초하루 새벽에 ‘모시는’ 경우도 있다. 동고를 ‘모시고’ 나온 후 『제신조(祭神調)』에 따라 3번을 치고 한 박자 쉬면서 9차례를 친다. 천상과 인간세상, 용궁의 3계의 신들을 공경히 모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동고의 소리만이 3계의 세상에 울려 퍼진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각 가정에서는 경(磬)을 치거나 폭죽을 터뜨리고 쇠뿔 나팔을 불면서 연장자들은 향을 피우고 종이돈을 사르며 제사를 지낸다. 제사가 끝나면 모든 촌락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두 명의 아동이 『풍수조(豊收調)』『광환조(狂歡調)』를 치고 사람들은 동고를 둘러싸 동고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기쁨을 만끽한다.

 

 

수족(水族) 사람들이 사용하는 악기 중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동고다. 삼도(三都) 수족 자치현에는 각 촌락마다 거의 모두 동고 한 개 이상을 가지고 있다. 명절, 제사와 장례식 때에 수족들은 동고를 사용한다. 명절은 주로 단오절, 묘절(卯節 : 혹 가절[歌節]), 하절(霞節)[모두 종족의 명절이다]에 사용한다. 명절을 맞아 각 촌락에서는 진귀한 동고를 ‘모시고’ 나와 먼저 제사를 지내고 나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동고와 목고(木鼓)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수족들의 동고 연주는 특색이 있다. 큰 가죽 북으로 반주를 하는데 높고 낭랑한 동고 소리와 낮은 북 소리가 서로 교차되어 고풍스러우면서 오래가고 열정적이면서 기쁨에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동고무(舞)는 고대에 제사를 지낼 때 추던 춤에서 기원하였다. 명절이나 경사, 애사 때에 춘다. 무용의 내용은 무기를 들고 전쟁을 나서거나 곡식을 수확하는 것 등이 있다. 동고와 북의 리듬에 맞춰 좌우로 돌거나 창을 휘두르며 진을 형성하기도 하고 환호작약하기도 한다. 춤은 동고소리에 맞춰 급박하게 흐르다 갑자기 멈추면서 극도의 흥분을 자아낸다. 동고를 이용하여 생산 활동을 지휘하거나 병사들을 급박하게 독려하며 전투에 나서는 장면들은 정신을 쏙 빼놓는다.

 

옛날 수족들의 동고는 망인과 관계가 있고 장례 풍속을 반영하고 있다. 삼도 수족자치현과 려파(荔波)현 경내에 고대 수족들의 석판(石板)묘가 보존돼 있다. 묘실 밖 양쪽에는 동고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시대는 대략 명청(明淸)시기로 동고의 문식 도안을 새겨 넣어 묘의 주요 장식으로 삼았다. 이는 수족들이 역사적으로 동고를 숭배했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장례 활동 중 노인이 숨이 끊어지면 동고 위에 앉히고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 다음 동고를 가지고 제물을 놓은 탁자로 사용한다. ‘카이콩(開控 : 수족의 상례[喪禮])’ 도중 중간 중간 동고를 치기도 한다. 수족들은 살아 있을 때에는 동고와 고락을 같이 하고 죽은 후에도 편안하게 떠나야만 후손들이 길하다고 여긴다.

 

 

수족들은 동고를 몹시 좋아한다. 동고를 잃어버리면 조상들을 욕보였다고 생각하고 동고를 돌보지 않으면 가업을 돌보지 않은 것과 같다고 여긴다. 동고를 빼앗기면 기쁨과 행복을 빼앗겼다고 여기고 동고를 부정하면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 문화와 유구한 역사를 부정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의식이 있었기에 동고가 이천 여 년의 흐름 속에서도 아직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동고의 수량이나 공예, 동고의 문화 함의, 그리고 동고가 소수민족의 생활 중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중국의 운남이 동고의 발원지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도 기억해 둬야 할 것이다, 운남이 중국의 일부가 된 것은 근래에 와서라는 것을. 그리고 운남과 귀주 지역의 독특한 문화는 중국 문화의 원류라는 중원과는 무척 다르다는 것을.

 

몽골 칭기즈 칸의 후예가 중원에 원(元)나라를 세우기 전, 운남과 귀주는 나름대로 찬란한 문명을 창출하고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여진의 후예인 만주족들이 청(淸)나라를 세우면서 전쟁을 통해 현재와 같은 국토를 억지로 만들지 않았다면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꽃 피우면서 자강불식했을 거라는 것을. 또, 해방전쟁이 끝난 후 모택동이 한반도로, 티베트로, 운남․귀주로 인해전술 식으로 군인들을 내몰지 않았다면…….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중국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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