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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3)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작업을 맡았다. 그가 번역.정리한 내용으로 <중국, 중국인> 새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약 10만 년에서 20만 년 전 베이징 주구점(周口店) 유적에서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화석 중 두골 화석이 사지 혹은 몸통 뼈화석보다 많았다. 이에 근거하여 학자들은 원고시대에 사람들에게 식인(食人)풍속이 실재했었다고 추정하였다. 『수서隋書․유구전流求傳』에 “남쪽 나라의 풍속은 다소 다른데 사람이 죽으면 마을에서 함께 먹는다.(南境風俗稍異,人有死者,邑里共食之.)”라는 기록이 있다. 식인 풍속은 음식물 결핍에서 생긴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파푸아 뉴기니(Papua New Guinea) 원시부락에서 이른바 ‘구루병(kuru disease)’ 이라는 괴병에 걸린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 병에 걸린 환자들은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이 괴병에 걸리는 원인은 무엇일까? 장기간 사람들은 원인을 찾지 못하다가 몇 십 년 전 병리학자인 대니얼 가이듀섹(Daniel Gajdusek)에 의해 원시부락의 종족인 포어족은 가족이나 친척이 죽으면 장례의 일환으로 시체를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특히 뇌를 먹는 사람에게 주로 발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리고 가이듀섹은 구루병이 슬로(slow) 바이러스 감염증임을 밝혀 낸 업적으로 1976년 B. 블럼버그와 함께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인류의 몽매, 야만의 시대에 식인의 풍속이 실재하였을까? 사람들은 또 어떻게 죽은 자를 처리했을까?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상고시대 생산력의 극단적인 저하로 인해 생활 물자가 극도로 결핍되고 인류의 생존에 시시각각 위험이 닥쳐왔다. 노동 능력을 상실한 노인들이 사회에 더 할 수 없는 부담이 되었을 때 “노인과 청장년 중에 누가 생존해 나가야 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대두되고 어쩔 수 없이 하나를 선택할 시기가 오자 씨족 전체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청장년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노인을 죽이고 배고픔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죽은 시체를 나누어 배고픔을 해결했다. 인류의 식인 풍습은 이러한 상황에서 생긴 것이라 추측한다.

 

중국의 역사서에 ‘식인’ 관련 기록이 보인다. 『묵자墨子』에 “초나라 남쪽에 사람을 먹는 나라가 있다.” 『수서隋書․유구전流求傳』에 “남쪽 나라의 풍속이 다소 다르다. 죽은 사람이 생기면 마을에서 함께 먹는다.” 만진(萬震)의 『남주이물지南州異物志』에서는 ‘오호(烏滸)’라는 나라는 사람을 먹을 뿐만 아니라 술안주로 삼는다는 기록이 나오고, ‘요인(僚人)’은 식인을 즐기고 심지어 진미로 여긴다고 까지 한 기록들이 보인다.

지질학자 바이덴라이히(Weidenreich)는 1939년에서 1940년 사이에 발표한 『중국 원인(猿人)의 동종 잔식(殘食) 여부』에서 그가 최초로 베이징 주구점 북경원인 발굴에 참여하였을 때 북경원인 화석 산지에 두개골이 몸체와 사지보다 더 많았던 상황에 미뤄 북경원인도 당시에 식인 풍습이 존재했었다고 추측하였다.
중국의 소수민족 중에도 아직까지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그들의 조상은 상고시대에 가옥을 지을 때는 부친을 나누어 먹고 곡식 창고를 지을 때는 모친을 나누어 먹으며 사람이 죽은 후 시체는 반드시 살아 있는 사람들이 나누어 먹었다고.

 

중국 고대의 원시씨족 중에 식인 풍속이 존재했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기타 민족 중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다윈은『비글(Begle)호 항해기』에서 남미 화산섬의 식인 풍속을 “겨울이었다. 화산섬 사람들은 기아에 허

덕이자 자신의 늙은 부녀를 죽이고는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헉슬리(Thomas Henry Huxley)는 『자연에서의 인간의 위치』에서 16세기 아프리카의 식인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기자인 존 건서(John Gunther)는 『아프리카의 내막』에서 아프리카인이 인육을 먹는 습관을 기록하면서 잠비아(Zambia)의 일부 부족은 “최근까지 시체를 먹는 상황은 보편적으로 행해졌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엥겔스는 베를린에 살고 있던 조상들도 16세기에 그들의 부모를 먹는 풍속이 있었다고 했다.

 

서양과 동양을 막론하고 식인과 관련된 자료들이 너무 많다. 이러한 자료들로부터 상고시대 인류사회에는 분명 식인 풍속이 존재했었음을 쉬이 추론할 수 있다.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지극히 야만적이고 수치스런 행위였음은 자명하지만 몽매한 시기 원시사회에서 그들이 보기에 이치에 맞는 것이라 판단했을 수도 있음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부락의 생존을 위해 약자나 죽은 자의 육체를 먹었다는 것에 대해 일말의 외경을 가져봄직도 하다. <중국, 중국인 4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국립 중국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종문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는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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