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작업을 맡았다. 그가 번역.정리한 내용으로 <중국, 중국인> 새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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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000년에서 4000년, 원시인들은 부락을 이루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토템과 점복(占卜)활동이 이루어졌다. 대략 기원전 4000년 앙소문화 유적에서는 조개를 이용해 만든 용호(龍虎)의 문양이 출토되었다. 이는 중국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용의 형상이다.
용(龍)은 중국 고대 전설 속에 있는 비늘이 있고 수염이 있으며 구름을 부르고 비를 내리는 신기한 동물이다. 이는 상고시대 사람들의 지극히 존중했던 토템이다. 몇 천 년 동안 용의 위엄, 정의, 용감하고 꿋꿋한 형상은 중국 민족의 마음 속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중국 민족의 상징이 되었다.
이 신기한 동물 형상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대대손손 중국 민족의 마음 속에 뿌리를 내렸다.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고 못할 것이 없는 ‘용’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중국문화를 ‘용의 문화’라고 하고, 중국은 자신을 가리켜 ‘용의 후손’이라고 한다.
중국의 광활한 대지 곳곳에서 용을 숭배했었다. 용을 가지고 이름을 붙이 산천, 촌락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용강, 용성, 용천…용의 이름을 붙인 중국식 건축물 또한 부지기수다. 용문, 용벽, 용정…용의 이름을 가진 민속도 한 둘이 아니다. 용주, 용등, 용적…용의 이름을 붙인 상가, 용으로 이름을 붙인 개인도 수를 셀 수 없이 많다.
고대 황제들은 스스로 ‘진룡천자(眞龍天子)’라 불렀다. 금빛 찬란한 궁전에도 용을 그려 넣었고 용을 조각했으니 그야말로 ‘용의 세계’라 할 것이다. 사람들의 생활 중에도 용을 가지고 도안을 한 복식, 기물, 완구 등도 수없이 많다. 심지어 언어생활 속에도 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용봉정상(龍鳳呈祥)’, ‘용마정신(龍馬情神)’, ‘와호장룡(卧虎藏龍)’……신화 중의 용은 더 변화무쌍하다.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지기도 하며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며 하늘에도 오르고 바다에도 들어간다. 사람들은 용을 좋아하고 찬송하며 숭배한다. 용은 길상의 상징이 됐다. 중국민족의 권위와 신령을 상징하는 것이 됐다.
용은 어떤 모양인가? 살아있거나 진짜 용을 본 사람이 어디 있으랴. 구체적인 형상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9종의 동물의 특징을 한 몸에 갖고 있다고 한다. 머리는 낙타를, 뿔은 사슴을, 눈은 토끼를, 귀는 소를, 목은 뱀을, 배는 대합을, 비늘은 잉어를, 손톱은 독수리를, 손발바닥은 호랑이 닮았다고 한다. 중국 약학서 『본초강목』에서 묘사한 용의 모습은, 입가에는 수염이 났고, 턱 밑에는 구슬(여의주), 낙타머리, 사슴뿔, 도깨비눈, 소귀, 독수리발톱, 등에는 81개(9×9=81)의 비늘이 달렸다. 이런 조합이 용에 대한 신비한 색채를 더해 준다. 여러 동물의 특성을 합한 형체로 신묘하고 물, 바다의 신으로 여긴다.
『설문해자』에 “용은 비늘 달린 동물 중 우두머리다. 숨을 수도 있고 나타날 수도 있고 아주 커질 수도 있고, 짧아질 수도 길어질 수도 있다. 발톱은 5개고, 구름을 일으켜 비를 내리는 등 조화 무쌍한 영물로서 춘분(春分) 때는 하늘로 오르고, 추분(秋分)에는 깊은 못 속에 잠겨 지낸다”고 했다.
‘토템’은 인디안 말 totem의 음역이다. ‘그들의 친족’이라는 뜻이다. 원시인들이 보기에 각 씨족은 모두 어떤 동물이나 식물과 친족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동물이나 식물은 씨족들에 의해 상징이나 보호자로 생각하게 됐는데 이것이 토템이다. 독수리 같은 몸에 비둘기 머리를 가진 ‘짐바브웨 새’가 바로 아프리카 국가 짐바브웨의 토템인 셈이다.
고고학자들은 출토된 문물 속에서 용이 중국 고대인들의 토템이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서안 반파 앙소문화 유적 중에 항아리 용문이 있고, 강소 오현 양저문화에서 출토된 기물에는 뱀 문양과 같으면서도 뱀이라고 볼 수 없는 화문이 있으며 내몽고 홍산문화 유적 중에는 검푸른 빛깔의 옥룡 공예품이 출토되었다.
어떤 학자들은 용이 물고기나 뱀에서 변화했다고 주장한다. 가장 원시적인 용의 형상은 서안 반포 앙소문화 유적에서 발굴된 항아리 용문이다. 그것의 형상과 후세의 용의 모형은 비슷한데 바로 뱀의 몸에 물고기 형태로 앙소문화 부락민의 토템 형상이라는 것이다. 산서 양분(襄汾) 하허(夏墟)유적에서도 반포와 비슷한 용문이 발견되었다.
반포에서 하허의 원시 용문을 보면 최소의 용은 물에서 살았던 일종의 뱀의 형상을 가진 큰 물고기였다고 추론된다. 하나라 사람과 앙소문화 원주민들은 왜 그것을 토템으로 하여 종족 표지로 삼았을까? 어쩌면 그들은 홍수라는 재해에 직면할 때마다 인류도 용의 형상을 가진 물고기처럼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생활하기를 바랐을 것이고, 그런 까닭에 용의 형상의 물고기를 민족의 수호신으로 삼아 숭배했다고 본다.
최근에 또 다른 학자는 ‘용’이 고대에 확실히 존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단지 그것을 용이라 부르지도 않고 사람들이 말하는 그렇게 신비스런 존재가 아니라 바로 거대한 ‘악어’라는 것이다. 악어를 보면 머리, 눈, 목, 배, 비늘, 손발, 손발바닥이 모두 용과 비슷하다 본다. 어떤 악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기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연의 기압의 변화에 민감하여 맑고 흐림을 예감한다고 한다. 비가 내릴 때에는 목청을 돋워 울부짖는다고 한다. 그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을 것이고. 고대 선민들은 그러한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신비한 동물로 받아들여 천둥의 신, 비의 신 혹은 북의 신으로 숭배했다고 본다.
어쩌면 원시 인류가 수렵과 유목 생활을 하면서 여러 종류의 야수들과 부딪쳤는데 ‘거대한 악어’처럼 가장 신비스럽고 위협적인 동물을 만나지 못해 그것을 두려워하고 숭배했으며 점차 땅의 신, 물의 신, 혹은 전쟁의 신으로 받아들였던 것이 아닌가 추론하기도 한다. 이런 이해가 차츰 ‘용’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더더욱 신비하고 신기한 대상으로 삼고 괴이함이 신령스러움으로 바뀐 것이라 보는 것이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거대한 악어’를 토템으로 삼은 민족은 고대 바빌론, 인도, 마야에도 있었다고 한다.
중국이 봉건사회에 진입하면서 중국의 용의 형상은 천태만상으로 변했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비희(贔屭)다. 다른 이름은 구부(龜趺)라고 한다. 모양이 거북과 비슷한데 이빨이 있다. 힘이 세고 무거운 것을 짊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문자를 좋아하고 이름 날리기를 바란다. 그래서 석비를 지고 있다.
둘째 이문(螭吻)이다. 치미(鴟尾), 치문(鴟吻)이라고 부른다.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목구멍이 젖어있고 비를 내리게 한다. 용마루에 올려놓으면 화재를 진압한다고 한다.
셋째는 포뢰(蒲牢)다. 울부짖기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기에 종두에 만들어 놓는다. 종소리가 더 멀리 전해지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넷째는 폐안(狴犴)이다. 호랑이를 닮았으며 위력이 있다. 감옥 문이나 관아 정당의 양측 면에 그 형상이 있는데 위력으로 죄인을 다스린다고 본다.
다섯째는 도철(饕餮)이다.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해 솥뚜껑이나 제기에 그려 놓는다.
여섯째는 공복(蚣蝮)이다. 평시에 가장 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다리에 새겨 놓는다.
일곱째는 애자(睚眦)다. 용의 머리에 승냥이 머리를 가지고 있다. 성격이 강폭 하여 죽이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도검이나 검병에 새긴다.
여덟째는 금예(金猊)다. 산예(狻猊)라 하기도 한다. 사자를 닮았다. 연기를 좋아하고 후광이 밝아 향로 위에 조각한다.
아홉째는 초도(椒圖)다. 조개처럼 생기고 폐쇄를 좋아해 문짝에 그려 붙인다. 입을 닫아 있는 것을 좋아하며 남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문을 지키는 신수로 사용된다.
이것을 용의 아홉 아들 즉 ‘구룡자(九龍子)’라고 한다.
중국에 ‘용생구자(龍生九子)’라는 말이 있다. “용 한 마리가 새끼 아홉 마리를 낳았는데 모습과 성격이 모두 다르다”는 말인데, 한 부모 밑에 태어난 자식이라도 성격이 각양각색이라는 뜻이다. 형제가 다르듯 성격과 좋아하는 것이 다른 용들은 각종 형태로 고대 풍격이 건축과 기물에 표현된 것이다.
용은 그야말로 중국문화의 핵심이라 할 것이다. <5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국립 중국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종문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는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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