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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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왕모(西王母)는 중국 고대 신화 전설 중의 여신이다. 서왕모의 최초 형상은 “사람을 닮았지만 표범의 꼬리와 호랑이 이빨을 가졌다(狀女其人,豹尾虎齒)”라 하여 무서운 모양을 하고 있다. 후에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점차 온화하고 점잖은 인물로 변하고 중생을 사랑하는 자모(慈母)의 형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 이후 서왕모는 도교의 신선의 계보에 올라 ‘칠성(七聖)’ 중 한 명이 되었다.
서왕모는 중국 도교 신선의 계보 중 가장 받들어 모시는 여선(女仙)으로 많은 신화 전설 속에 나타난다. 신화나 전설이란 어렴풋하여 분명하지 않다 하더라도 근거 없이 날조한 것이라고만 볼 수 없다. 그 속의 인물들은 사람들이 특정 사회생활의 기초 아래 창작해 낸 것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시대에 따라 서왕모의 형상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서왕모는 원래 재앙과 역병, 형벌을 주관하는 괴이한 신이었는데 후대로 전해오는 과정에서 점차 여성화됐고 온화하게 바뀌었으며 상서롭고 자애로운 여신으로 변했다. 전설에 따르면 서왕모는 곤륜(崑崙)산의 요지(瑤池)에 사는데 정원에는 반도(蟠桃)가 심어있어 그것을 먹으면 장생불로 한다고 한다.
『산해경』에 기록된 서왕모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것’으로 후세 전설 중의 서왕모하고는 같이 얘기할 수 없다. 그래서 학자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네모 모자를 썼으며 표범 꼬리에 호랑이 이빨, 포효하는’과 같은 특징 때문에 서왕모는 원래 고대 서북지역 소수민족 부족의 토템이라고 추론하기도 한다. 서왕모가 반인반수의 괴의한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고대 중국의 동물숭배와 토템 숭배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말이다. 고대인들은 호랑이나 표범 등 맹수를 숭배했는데 서왕모 부족은 호랑이나 표범을 토템으로 하여 자신들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삼았을 것이라 본다.
그런데 『목천자전』에 이르면 서왕모는 온화하며 기품이 있는 여성 통치자로 변한다. 주나라 목왕이 팔준(八駿)을 타고 천하를 주유하다가 곤륜산에 이르렀을 때 백규(白圭) 현벽(玄璧) 등의 옥기를 가지고 서왕모를 알현했다. 이튿날 요지에서 서왕모를 모시고 연회를 베풀었는데 두 사람은 시를 지으면서 서로 축복을 내렸다. 연회가 끝난 후 목왕은 다시는 만나기 힘든 기회를 기념하기 위해 엄자(崦嵫)산 정상에 올라 ‘서왕모의 산’이라는 석비를 세우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렇듯 『목천자전』속의 서왕모는 끔찍하고 무서운 모양에서 용모가 아름다우면서 학식이 있는 여신으로 완전히 탈바꿈한다. 자태가 아름답고 사람이나 사물을 아끼며 신선 중 재능 있는 여인이 됐다. 이보다 더 이후 『한무제내전』에서는 절세의 용모를 지닌 여신이 되어 한무제에게 3천년에 한 번 열리는 반도(蟠桃)를 하사한다. 도교에서는 매년 3월 초삼일 서왕모의 탄신일로 정하고 성회를 개최하는데 민간에서는 ‘반도성회(蟠桃盛會)’라 한다. 신마소설로 유명한 『서유기』에서는 반도성회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 옥황상제하고는 부부관계가 아니면서 영소전(靈霄殿)에 속한 신하도 아니다. 그녀는 서방 요지(瑤池)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여신의 우두머리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반도성회를 준비하고 관장하는 일을 한다.
전설에 따르면 서왕모는 장생불사의 영단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이 먹으면 득도하여 신선이 된다고 한다. 『회남자』에는 “후예가 서왕모에게 불사약을 얻었는데 미처 복용하기도 전에 항아가 훔쳐 먹어 신선이 된 후 달로 도망을 가서 달의 정령이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원래 천신인 예(羿)가 하계에 귀양살이를 하여 그의 부인인 항아(嫦娥)와 함께 세상 사람이 됐다. 그는 부인 항아에게 미안함을 느껴 “천상에는 등급이 엄격한데 반해 인간세상은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끝내 죽을 수밖에 없으니 만약 장생불로하려면 약수(弱水)를 건너고 화산(火山)을 넘어 곤륜산에 올라 서왕모에게 불사의 영약을 얻어오면 될 것이다.”라고 하여 실행에 옮겼다.
서왕모는 원래 서방 옥산의 산꼭대기 동굴에서 살면서 자신이 키우는 붉은 머리를 하고 검은 눈을 가진 청조(靑鳥) 3마리로 하여금 순번에 따라 음식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녀는 호랑이 이빨과 표범의 꼬리를 가지고 있으며 머리는 산발하고 옥비녀를 하고 매일 아침과 저녁에 산 정산에서 포효한다. 천재지변, 질병, 형벌을 주관하고 불사약을 조제, 보관한다. 황제가 구중천 외로 은퇴하자 서왕모는 곤륜산으로 이주하였다. 그때 그녀는 이미 조화롭고 기품이 있으며 의젓한 자태를 지닌 귀부인으로 바뀌었다.
곤륜산은 약수(弱水)가 감돌고 있는데 약수는 배를 띠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깃털도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약수 밖에는 염화(炎火)산이 있고 산위에는 화염이 주야불식한다. 예는 세상을 덮을 만한 신력과 초인적인 의지로 염산을 넘고 약수를 건너 1만 3천 1백 12보 2척 6촌이나 되는 깎아지른 절벽을 기어올라 곤륜산 정상에 있는 궁전에 다다라 서왕모를 알현했다.
서왕모는 예의 의지에 경탄하면서 그의 처지를 동정하여 약을 건네주면서 말을 했다. “불사약은 불사나무에서 열리는 불사과로 제련한 것이다. 불사나무는 3천년에 한 번 꽃이 피고 3천년에 과일 하나가 열리며 약을 제련하는데 3천년이 걸린다. 내가 보관하고 있는 약은 한 알 밖에 남아있지 않으니 두 사람이 나누어 먹으면 장생불로할 것이요 한 사람이 먹으며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그런데 항아는 천당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예가 밤에 사냥을 나간 틈을 타 혼자 약을 삼켜버렸다. 그러고는 가뿐하게 날아 쓸쓸한 월궁으로 날아갔다.
나중에 서왕모는 도교의 신선의 계보에 오른다. 『열선전집』기록에 따르면 서왕모는 귀대금모(龜臺金母)로 성은 구(緱), 이름은 回(회), 자는 완금(婉妗) 또는 태허(太虛)다. 그녀는 동왕공(東王公)과 함께 음양이기를 다스리고 천지를 조절하여 만물을 기른다. 여선들의 통괄자라 하였다. 그리고 『운급칠첨』에서는 “아래로는 곤륜을 다스리고 위로는 북두를 다스린다[下治崑崙,上治北斗]”고 하였는바 도교에서는 서왕모를 ‘칠성(七聖)’의 하나로 모신다. 그녀의 단정한 용모는 이미 정형이 되어 유일한 표준 양식이 되었다. 서왕모는 왕모낭낭(王母娘娘)이라 하기도 하는데 대만에서 특히 존중받는다. 민간신앙 중에서 불로불사의 여신으로서 숭상하고 숭배한다.
이천 여년 속에서 원시적 신화 전설이 후세 사람들이 끊임없이 가공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덧붙이면서 서왕모는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어째서 서왕모는 이런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 이 문제는 아직까지 민속학자들이 해결하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중국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