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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현장-남기고 싶은 이야기]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39)

2002년 선거에서 낙선한 난 상대의 중상모략과 허위사실 공표 등 선거법 위반으로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그걸 바로잡고 제대로 된 선거문화를 구현하고자 고발이란 강수를 선택했지만 어이없게도 나 역시 선거법 위반 피의자가 됐다. 결국 나까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그러나 그때의 재판과정을 지켜보면 흡사 ‘코미디’를 연상한다. ‘얼토 당토 않은’ 당시의 재판과정을 이제 말하고자 한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나와 경쟁했던 지사 당선자의 선거법 위반 혐의는 6건이나 됐다. 그러나 그의 혐의 중 가장 죄질이 무거운 건 ‘허위사실 공표’였다. 그는 2002년 6·13 선거를 앞두고 도저히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거짓말’을 했다.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가 축협중앙회장으로 있을 때 대우채권을 사서 5100억원의 적자를 냈다고 한 것이다. 선거 전인 5월24일 제주MBC의 후보자토론회에서 “이게 경영시대를 열겠다는 도지사 후보인가”라며 나를 공박했다.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투표일 이틀 전인 6월11일엔 한라일보 1면에 ‘이런 사람은 절대 안된다’는 광고를 내고 “신구범 후보는 축협중앙회장 때 마치 구멍가게 처럼 전횡을 부리다 마침내 재정을 파탄시킨 사람이다”고 알린 것이다. 명백한 거짓말이다. 말도 안되는 주장이었다. 명확한 근거를 갖고 있었기에 당시 우리 선거캠프는 “당선된다 하더라도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가 분명하다”고 판단, 법정에서 철저히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생각이었다.

 

 

재판이 순조로이 진행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2003년 2월24일로 예정된 4차 공판은 연기됐다. 법원의 정기인사로 재판관이 바뀌게 된 이유였다. 그런데 3월2일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새로 부임, 우리 사건의 재판장을 맡게 된 박종문 부장판사가 피고인 현직 지사의 법률대리인과 골프회동을 갖고 저녁엔 질펀한 술자리도 곁들였다는 것이다. 당시 현직지사의 법률대리인은 김선우·현순도 두 변호사다. “사건 피고측 변호사와 재판장이 그리 어울린다는 게 말이 되는가”란 의아심을 갖고 있었다. 좀 어이도 없는 지라 내 변호인인 김승섭 변호사에게 “이러기도 하냐?”고 물어봤다. 그는 “박 판사는 호탕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판사 중 절반은 원칙주의자이지만 나머지 반은 그렇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낌새는 이상했다. 더욱이 그 시절엔 수원지법 소속 한 판사가 자신이 맡은 사건의 변호인과 골프회동을 가졌다가 사실이 알려지자 법복을 벗은 일이 있다. 사실상 ‘꼭 같은 일’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그런 사실을 눈치 챈 게 불안했던지 재판장이 우리 변호사를 통해 협조를 요청했다. 이미 제주의 한 지방언론의 정보를 입수, 기사화를 준비 중인 때였다. 박판사의 요청은 “신 지사가 모 지방언론과 잘 통한다는데 기사화를 막아 달라”는 것이었다. 김승섭 변호사도 “우리 역시 재판에 매인 상황이니 그냥 협조해주자”고 나에게 건의했다. 선선히 부탁을 들어줬다. 해당 언론의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피해자가 될 상황이니 내 얼굴 보고 그냥 없던 일로 눈 감아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 ‘골프커넥션’은 재판에서도 위력을 발휘하더니 어이 없게도 나에겐 ‘뒤집어씌우기’로 둔갑했다.

 

3월24일 박종문 부장판사가 새 재판장 자리에 앉은 공판이 열렸다. 증인으로 황정환 축협중앙회 신용담당 부회장과 김경환 신용담당 상무가 나왔다. “부실 대우채권을 매입해 5100억원의 손실을 내가 끼쳤다”는 것에 대한 증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대우사태는 1999년 6월30일 터졌다. 하지만 신구범 전 회장은 7월10일 당선, 취임했다. 그러니 대우채권과 신 회장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허위사실을 내 경쟁후보가 공표했다는 게 간단히 입증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증언을 하던 와중에 재판장이 끼어들었다. “허위사실이라 하더라도 본인의 고의가 없었으면 죄가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증언과 심리가 한창인데 벌써 판결을 내리는 셈인가?” 의혹의 시선을 거둘 수 없는데 나와 함께 법정에 앉은 다른 피고는 검사심문에서 당당하게 진술을 해댔다. “우린 채권 같은 거 모릅니다. 저는 동아일보 보도만 보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발뺌을 하는 것이다. 재판장이 진술을 도와주고, “난 모르는 일이었다”며 모르쇠 작전으로 가며 우애를 과시하는 듯 했다.

 

재판을 끝내고 나와 변호사에게 이상한 낌새를 전달했다. 그 역시 “아무래도 재판장이 허위사실 문제를 넘어갈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내 상대방은 2002년 선거에 나오기 전 총무처 차관을 지냈다. 총무처 차관은 당연직 연금관리위원회 위원장이다. 연·기금을 갖고 투자를 결정해야 하는 사람인데 채권을 모른다는 건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내가 제안했고 그를 기소한 이건석 검사도 그 제안을 받았다. 다음 공판에서 ‘부실채권 매입 운운’한 허위사실 공표문제에 대한 검사의 심문조서를 우리가 써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심문조서의 골자는 내가 직접 만들어줬다. 요지는 이렇다.

 

“지사 당선자는 1999년 1월3일 지방은행인 제주은행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제주은행 도민주 갖기 기자회견을 강영석 제주상공회의소 회장과 공동으로 했다. 그러나 2000년 12월 18일 금융감독위는 제주은행을 부실은행으로 결정했다. 기존 주식 모두를 무상소각하는 감자명령을 내린 것이다. 졸지에 제주은행 주식은 모두 휴지조각이 됐다. 지사 당선자의 권유로 제주은행 주식을 매입한 도민 9200명이 하루 아침에 400억원을 날린 것이다. 여기에 대해 그는 단 한마디 사과도 없다. 게다가 그 시절을 전후로 그 운동을 벌였던 당사자가 고작 채권이 무엇이지 모른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더욱이 지금 현직 지사인 피고는 총무처 기획실장과 차관을 지낸 사람이다. 총무처 차관이면 공무원연금법 75조에 의해 당연직으로 공무원연기금 심의위원회 위원장이다. 채권투자와 주식투자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채권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건 비열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검사는 내가 써준 심문조서의 요지 그대로 공판정에서 그를 공박했다. 4월7일 6차 공판에서다. 물론 허위사실 공표 당사자인 피고가 제대로 답변을 했을 리 없다. 그는 쩔쩔맸고, 검사의 계속되는 추궁에 막판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날의 공판정엔 나에게 거짓혐의를 뒤집어 씌운 도청 하위공무원인 H씨도 나왔다. “사실대로 말해 달라”는 내 청에 미국에 있다는 이유로 마이동풍이더니 어찌된 일인지 이번엔 재판정에 나왔다. 이전 해 선거가 끝난 뒤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죽을 죄를 졌다”고 애걸하듯 말하던 그는 그날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는 증언하길 “신 지사가 오현고 출신 공무원 모임에 참석, ‘쉽게 이기는 방법이 있어’라는 발언을 했고, 그 발언의 의미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사실이기에 지사측근인 간부공무원이 찾아와 확인서를 요구하자 써줬다. 지사 당선자는 확인서를 써주고 난 뒤 검찰조사를 받고 나서 만난 적이 있다.”

 

내가 지사로 재임하던 때 그의 특출한 영어실력을 알아보고 계약직 공무원으로 특채한 친구였는데 그는 그런 식으로 현직 지사에게 ‘충성’을 다했다. 분노하지도 않았다. ‘불쌍한 친구’라고만 생각했다. 공무원 직을 유지해야 하고, 생계를 꾸려야 하는 그를 ‘이용’한 자들의 만행에 그 역시 희생됐을 뿐이다. 그저 그들은 ‘신구범 공격의 도구’로 써먹고 버릴 셈이었을 것이고, 지금 그는 미국에서 그리 유쾌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찌됐든 그날의 공판으로 난 감을 잡았다. 내 모교출신 공무원 모임에 참석, 하지도 않은 말이 한 것처럼 둔갑하고, 그걸 ‘사전선거운동’이란 선거법 위반의 굴레로 뒤집어 씌운 데는 공동창작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현직 지사와 그의 핵심측근 간부 공무원, 애꿎은 하위 공무원 등의 공동창작품이었던 것이다. 그런 공동창작과정엔 또 한명이 등장한다.

 

4월21일엔 여러 정보를 근거로 당시 제주도청에 출입하던 기자 세 명을 우리가 증인신청했다. 이유는 하나다. 지사 당선자의 친척인 한모씨는 내가 “쉽게 이기는 방법이 있어”란 발언을 한 걸 어느 날 우연히 제주도청 기자실에 들렀다가 기자들이 하는 말을 귀동냥으로 듣고 도청 간부공무원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는 것이었다. 그 제보를 근거로 도청의 간부공무원이 직접 나서 그 자리에 참석했다는 하위공무원으로부터 확인서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검사는 그날 기자실에서 그런 얘기를 나눈 기자들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세 명의 기자들은 하나같이 “그런 말을 한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내 혐의가 풀릴 것 같은 실낱 같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날 공판을 끝내고 난 뒤 재판장으로부터 우리 변호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주 금요일 제주타임스에 나온 김덕남 칼럼을 봤다. 판사와 변호사가 골프를 하고 저녁식사 회동을 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법원이 긴장하고 있고, 재판부는 신측 사람들의 소행으로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리 뻔뻔할 수 있을까?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할 사람들이 피고 측 변호인과 골프도 모자라 저녁음주회동을 해놓고 양심의 가책도 없단 말인가? 오해받을 짓을 해놓고도 자성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에게 문제가 벌어진 탓을 하려 한다? 분노가 치밀었고 신경이 곤두섰다. 하지만 그 문제로 내 변호인과 상의를 해봐도, 판사로 근무중인 큰 애의 생각을 들어봐도 “이걸 잘못 건드리면 재판에서 우리가 상당히 불리해질 수 있다”는 답변이었다. 이게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그 시절 사법부의 현실이었다. 나 조차 이럴 진대 힘 없는 국민은 너무도 억울하고 불쌍하단 생각에 이르렀다.

 

5월로 접어들었다. 여러 번의 공판을 거치며 상당부분 진실이 규명됐기에 이제 1심 선고로 일단락될 걸로 기대했다. 솔직히 한 두 번도 아니고 재판정에 수도 없이 불려다니다 보니 이제 진저리가 나기 시작했다. 1995년 민선 1기 선거에서 당선된 직후부터 수차례 재판정에 불려다니고 무혐의와 무죄선고를 반복해서 얻어냈다. 그 시절 재판에 임하는 과정이 얼마나 몸서리치게 싫었던지 그 때 내 비망록은 이렇게 적고 있었다. “이제는 날 재판의 굴레에서 제발 풀어주길 간곡히 기도하고 싶다. 자유의 몸 깨끗한 몸으로 내 삶을 살고 싶다 내 당당한 삶의 영역에 검찰과 사법부는 언제나 재앙으로 끼어들 것인가? 답답하다.”

 

끝날 것 같은 재판이 지속되면서 내 상대방 역시 마지막 몸부림에 나선 듯 했다. 여러 관변단체들이 그를 구명하고자 탄원 서명운동에 나선 것이다. 강영석 상공회의소 회장이 경제살리기 단체 대표로 탄원서를 내더니 도의회에선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나와 지사 당선자의 화해를 추진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때 한나라당의 비례후보로 도의원이 된 H의원이 일을 저질렀다. 그는 본회의장 5분 발언을 통해 “전·현직 지사가 화해해서 도민이 통합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당시 한나라당 제주도당의 정경호 대변인은 곧바로 성명을 내고 “H의원의 발언은 한나라당의 공식입장이 아니다”며 발언을 격하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지사 당선자는 이어 김영훈 도의회 의장에게도 서신을 보냈다. “지난 선거과정에서 개인적 시시비비가 있었는데 그건 말 그대로 개인적 문제다. 물론 사법판단이 민주주의의 근간이지만 그 후에 생기는 도민들의 부끄러운 분열상황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문제가 더 커졌다. 한나라당 소속 도의원 11명이 자당 소속 비례후보의 발언에 대해 ‘배후가 의심된다. 해명하라’고 지적하는 한편 지사가 도의장에게 보낸 서신은 “재판결과가 우선하는 시점에서 큰 잘못이다”며 의장의 경거망동을 우려했다. 더불어 그들은 현직 지사의 사퇴를 권고했다. 그 때쯤 상공회의소와 새마을부녀회·노인회 등 각종 단체 명의의 탄원서가 법원에 접수됐다.

 

나로선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오랜 기간 그와 숙명의 대결에 나서면서 그가 얼마나 뻔뻔함의 극치인지, 그런 자가 제주도정을 좌지우지하면서 제주도민들이 얼마나 불쌍하게 당했는지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 불행에 맞설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5월12일로 예정된 마지막 공판이 돌연 6월2일로 변경됐다. 재판부와 변호인 간 골프회동 사건이 알려지고 난 뒤 대법원과 제주지법 간 상당한 갈등이 생겼다는 말들이 들려왔다. 그러더니 재판장이었던 박종문 부장판사가 재판회피 신청을 했다. 피고인 석에 앉는 이들이 불공정한 재판이 진행될 경우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는 건 봤어도 솔직히 그때까지 재판부가 직접 피고를 상대하지 않겠다고 ‘재판 회피 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이제 재판장은 이례적으로 이흥복 제주지방법원장이 직접 맡게 됐다.

 

 

그리고 5월19일 우리 측 변호사를 통해 재판회피를 신청한 전 재판장의 회피신청서와 사유를 접하게 됐다. 기가 막혔다. 그의 재판회피 신청 사유는 이랬다. “불순한 목적을 가진 세력들이 재판과정에서 도민들을 호도하고 또 재판결과에도 불복하여 도민을 선동할 우려가 있기에 이 재판을 회피한다.” 자기들이 오해받을 경거망동을 저질러 놓고, 그런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벌어져 ‘공정한 재판’을 의심받게 된 일은 쏙 빼놓고 그런 사유를 댄 것이다. “오만한 엘리트 의식을 가진 세상물정도 모르는 판사가 제주도민들을 모욕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그 판사는 여론이 무서워서 재판을 못하겠다는 비겁한 행동을 하고 그 이유를 ‘불순’, ‘선동’, ‘호도’ 등의 단어를 써가며 우리 도민들을 우롱했다. “불법 선거를 엄단하기 위해 협조하시라”는 검사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선거법 위반 피의자 대열에 들어서 기소됐고, 재판을 받게 됐는데도 불구하고 재판에 진지하게 임하자는 내 생각은 무지였다. 내가 너무도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때 생각했다. “이제는 나와 경쟁했던 지사 당선자와의 문제가 아니다. 썩어빠진 사법부와 정면으로 맞서야겠다.” 난 5월21일 한나라당 중앙당 기자실을 찾아갔다. 박용수 한나라당 중앙당 부대변인과 공동기자회견을 했다. “충분히 오해받을 골프모임에 참석했던 판사가 그걸 감추고자 비열하게 재판회피 신청한 것도 모자라 ‘소란’ 운운하고 있다. 대법원의 철저한 진상파악과 조치를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대법원장에게 서신으로도 보냈다. 회견을 끝내곤 또 한걸음에 서울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전재일 간사를 만났다.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전달하고 시민단체의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이해하지만 자기들로선 현재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사건이 더 드러날 때까지 기다려봐야겠다”는 것이다. “이건 정치적 사건인데 기자회견 하면 언론보도 나오고 그런 보도 근거가 있어야 움직일 명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언론이 크게 다뤄줄 줄 알았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많은 기자들이 내 기자회견장에 있었는데 어느 매체에서도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대법원이 강력히 언론에 로비했다는 말이 내 귀에 들려왔다. 재차 언론기관 기자를 만나 호소했지만 그들은 “무슨 사회단체에서 성명이라도 나와야 우리도 움직인다”는 말 뿐이었다. 언론과 시민단체가 마치 핑퐁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사법체제의 틈바구니에서 문제를 바로잡고자 목소리를 높였건만 주위의 시선은 ‘한 정치인의 주장’으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수원지법의 판사는 해당사건의 변호인과 골프를 쳤다고 곧바로 사직했는데 똑 같은 사안인 제주지법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선 대법원이 다른 잣대를 들이댔다. 이런 게 법인가?

 

6월16일엔 검찰의 구형이 내려졌다. 제주지검 검사는 법정에서 6건의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지사 당선자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성추행 논란 발언에 무고죄를 얹고, 고교동문 모임에 참석해 사전선거운동 발언을 했다는 혐의 등 2건으로 기소된 나에겐 무고에 대해 징역 1년, 선거법 위반에 징역 6월 등으로 나눠 구형했다. 기가 막혔다. “불법선거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협조해달라. 이 정도는 어느 재판부에서도 벌금 30만원을 넘을 수 없다”며 나를 회유, 법정에 세운 그 검사가 나에게 그런 형량을 구형한 것이다. 그 시절 부산지법에서 선거법 위반 재판에 임하고 있던 큰 아들은 분노했다. 나로선 “애비가 돼 가지고 피고의 모습을 자식에게 보이는 것이 몹시 부끄럽다”는 마음 뿐이었다. 마음이 처절했다. 난 내 큰 아이가 참 고운 심성을 가졌다고 본다. 그런데 난 그 축복받은 아이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집안에선 자식 때문에 애비가 속을 썩는데 우린 애비 때문에 자식이 속을 썩는다.” 한없이 자괴감이 몰려왔다.

 

7월4일 제주지방법원의 결정이 내려졌다. 1심 선고다. 재판장은 내 상대방에게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을, 그리고 나에겐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내 상대방은 6건의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됐지만 잘 들어보지도 못한 ‘작량감경’(酌量減輕)이란 단어까지 등장하면서 고작 벌금 300만원이 다였다. 난 성추행 논란 발언에 대해 덧씌워진 무고건이 무죄이고, “쉽게 이기는 방법이 있어”란 발언은 사실로 인정된다며 그 혐의 하나만 고작 유죄로 인정했는데 벌금 150만원을 매겼다. 이런 걸 공정하다고 말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물론 그 시절 제주참여환경연대 등 7개 시민단체가 들고 일어났다. “현직 지사 봐주기식 재판이자 불공정 재판의 전형”이라는 것이었고, 그들은 7월6일부터 제주지법 앞에서도 1인 시위도 벌였다. 내 지지자들도 분노했다. 하지만 난 그들을 달랬다. 담담했다. 법원의 선고결과를 수용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겉으론 지사 당선자를 봐준 것 같지만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그는 결과적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것이다. 유죄가 분명하다면 그의 당선무효는 확실시되는 것이고, 그렇게 봐주기식 재판이었는데도 그랬다면 상황은 종료되는 것으로 봤다. 그것으로 됐다. 이제 그만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 더욱이 선거기간 중 나의 성추행 논란에 대한 지적이 무고라는 혐의도 무죄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역으로 ‘성추행은 분명히 있었다’는 걸 법원이 인정한 것이었다. 밝혀질 게 밝혀졌고, 그저 나로선 대법 확정판결 후 5년간 정치활동을 못하는 피선거권 제한의 신분이 된다는 것만 받아들이면 됐다.

 

 

7월11일 도의회 도민의 방으로 갔다. 기자회견을 했다. “이제 모든 걸 잊겠다. 모든 게 드러난 이상 더 이상 논란을 삼지 않겠다. 다만 나의 성추행 논란 발언에 대해 덧씌워졌던 무고혐의가 무죄로 밝혀진 건 곧 지사 당선자의 잘못이 있었다는 걸 재판부가 확인한 것이다. 이제 현직 지사가 6·13선거 직전 벌어진 성추행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한편 도민에게 사과하기를 정중히 요청한다. 그러면 이제까지 겪은 모든 일을 잊겠다. 그러면 화해하겠다.” 하지만 그때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그로부터 아무런 답변을 들어본 일이 없다.

 

그 사건은 광주고법 2심을 거쳐 2004년 4월7일 대법원1부(주심 조무제 대법관)에 의해 마무리됐다. 지사 당선자는 6·13 선거 후 1년 10개월여만에 벌금 300만원이 확정돼 지사직을 상실했다. 나 역시 벌금 150만원이 확정됐다. 하지만 경쟁후보의 당선은 무효처리됐고, 그후 6·5 재선거로 김태환 지사가 당선돼 지사직을 수행하게 됐다.

 

그 시절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광주고법 항소심 재판 때는 나를 기소한 제주지검의 검사가 법정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내가 재판장을 향해 “저 사람이다. 얼토당토 않은 혐의에 대한 피의자 심문조서에 날인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저 사람이 지사 당선자를 잡으려면 협력해주는 게 좋다. 이거 30만원 짜리라고 해서 시인해 준 것”이라고 그를 지목했다. 그때 그는 얼굴이 벌개지면서 아무 소리도 못했다. 그래도 유죄판결을 받자 대법원 상고심으로 가면서 난 변호인을 사법연수원장 출신인 가재환 변호사에게 맡겼다. 그는 농림부 시절 내 절친한 친구인 조일호 농림부 차관이 추천한 사람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가서 법무법인 태평양을 찾아갔다. 그는 우선 사건을 개략적으로 설명해달라고 나에게 요구했다. 브리핑하듯 그에게 사건의 내용을 전달하자 그는 딱 한마디를 했다. “괘씸죄에 걸리셨군요.”

 

 

재판이 끝나고 우연히 지금은 작고한 소설가 오성찬씨를 만났다. 난 그의 해박한 지식과 문학적 상상력, 적절한 제주진단을 귀담아 듣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돌연 "글을 쓰시라“고 권유했다. 지금껏 겪은 일을 모두 기록으로 후대들에게 남겨 놓으라고 말했다. 그는 말했다.

 

“죽은 제주다. 비판은 있어도 대안은 없는 제주다. 굴종은 있어도 자존은 없다. 자원이 있어도 비전이 없는 제주다. 기막힌 현실이다. 이 죽은 제주에 대해 바람을 불어넣는 글을 쓰라.”

 

“비판을 받아야 할 자가 비판하는 사회, 대안을 제시할 자가 침묵하는 사회, 자원을 몰각하면서 서울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는 사회가 바로 제주다.”

 

귓전에 괘종시계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뒤통수를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그의 말이 그렇게 가슴 속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 적이 없다. 그 글을 이제 <제이누리>에 쓰고 있다. 지금이라도 그럴 기회를 얻었으니 감사하다. 난 아직 고마워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40편으로 이어집니다>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

 

=1942년생. 오현고를 나와 육군사관학교 4년을 중퇴, 1967년 5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자로 입문했다. 제주도 기획관,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농무관, FAO(국제식량농업기구) 한국교체수석대표, 농림수산부 축산국장, 농업구조조정정책국장,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YS정부 시절인 1993년 12월 제29대 제주도지사로 취임했다.

 

이어 첫 민선 지방선거인 95년 6·27선거에선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돼 31대 지사를 역임했다. 그러나 98년, 2002년 두 번의 제주지사 선거에선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후 축협중앙회장을 거쳐 친환경 농업회사법인인 (주)삼무와 전시판매장인 삼무힐랜드를 운영했지만 지사 재직시절 뇌물수수사건에 휘말려 2년여 수감된 뒤 풀려났다. 삼무힐랜드는 수감기간 중 문을 닫았다.

 

제주삼다수와 관광복권,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제주교역, 제주세계섬문화축제 등이 그의 지사 재직시절 작품이다. 현재 제주생태도시연구소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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