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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현장-남기고 싶은 이야기(1)]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

2012년 제주호의 항해는 어느 곳을 향하고 있을까요? 그동안 우리는 모진 풍파와 악천후를 만나서도 이겨냈고, 어떨 땐 쾌조의 순항도 거듭했습니다. 모두 우리 제주인이 합심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기에건 그 시대에 숨겨진 얘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더불어 과거를 살았고, 역사를 보았던 시대의 인물이 있습니다. 제이누리는 이제 그들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그들의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 봅니다. 그들의 인생사를 통해 미래를 향한 슬기를 얻고자 합니다. 먼 미래를 향한 제주호의 항해에 다시금 좌표를 재정립하고자 합니다.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가 보내온 글이 연재의 첫 순서입니다. 제이누리는 신 전 지사 이외에도 격동의 현장을 목도한 제주의 인물을 발굴, 연재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편집자 주

 

 

해가 떠오를 때 난 제주의 비상을 꿈꾼다. 해가 질 무렵 난 제주에 지혜의 샘이 솟고 있다고 믿는다.

 

성공도 있었지만 과오도 많았다.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제주의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내 자신이 그런 능력을 갖췄는가라고 자문해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제주도민들에게 너무도 죄송스런 때가 많았고, 도민의 열망을 실현시켜 드리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이 무겁다. 이제 내가 걸어온 길을 생각의 편린으로나마 도민들께 말씀드리려 한다. 제주의 역사, 제주의 미래를 재정립하기 위한 단초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내 나이 24살. 1960년대 중반이던 그 시절 난 헤매고 있었다.

 

육군 장교 임관을 기다렸던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난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육사 4년 중퇴’란 꼬리표를 달고 대학(서울 농대) 2년에 재학중이던 아내와 난 무작정 낙향했다. 농사나 짓겠다는 체념이었고, 실제 보리·유채농사에 매달렸다. 그러나 큰 아들(신용인-현재 제주대 로스쿨 교수)을 얻게 됐다. 미래가 불안했고, 솔직히 답답했다. 무언가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는 회한이 밀려왔다.

 

고시를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대학 중퇴 학력인 나는 고시를 곧바로 볼 자격도 없었다. 대학졸업자 또는 졸업예정자만 볼 수 있는 행정고시를 치르기 위해 난 예비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사법행정요원 시험이다. 1967년 초 사법행정요원 시험을 ‘운좋게도’ 단박에 통과했고, 그해 5월 제5회 행정고시에도 단숨에 합격했다. 지금 생각해도 나 역시 어리벙벙한 일이었다. 몇 번은 더 시험을 치르게 될 줄 알았는데 지금으로선 정말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이야 행정고시로 300여명의 합격생을 배출하지만 당시만 해도 고시합격 동기는 24명이었고, 행정직은 나를 포함해 18명이 고작이었다.

 

고시합격 소식에 아내도 기뻐했고, 친가에도 이제야 기 펴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농사짓는 모습을 마냥 마뜩치 않은 얼굴로 보고만 있던 처가의 어르신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당당할 수 있었다.

 

고시합격통지서를 받고 며칠 뒤 제주도청에서 연락이 왔다. “지사(당시는 정우식)가 좀 보자”는 것이었다. 고향인 제주도청 근무를 자원했는데, 내무부(현 행정안전부)에서 제주도청으로 나를 배정했다는 말도 알려왔다. 그때 내 차림은 가관이었다. 먹고 살기가 급한 처지라 농삿일은 물론 막노동판까지 전전긍긍하던 때였다.

 

도청으로 가기 직전 난 제주항 부근 동부두의 대창기업 공사판 현장에 있었다. ‘삼발이’라고 부르는 테트라포드 작업장이었다. 운동화에 티셔츠, 스포츠머리인 20대 고시합격생의 도지사 알현은 지금 생각해봐도 우스꽝스러웠다. 서무과장인 전창수(후에 제주시장 역임)씨의 안내로 난 정우식 지사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정 지사는 “육사를 다녔다면서···”라고 한마디 툭 내뱉고는 참모에게 “남제주군수로 발령내라”고 지시했다.

 

당시 남제주군수 자리는 북제주군수보다 급이 한 단계 떨어진 ‘을지군수’였다. 사무관도 가능한 자리였다. 하지만 제주도청 간부들은 이를 말렸다. 고작 25세인 청년이 군수로 간다는 게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일인 것 같다. 더욱이 행정고시 합격자가 제주도청에 발을 들여 놓은 건 처음 있는 일이라 제주도청으로선 인사의 전례도 없는 경우였다. 시일이 걸리는 동안 난 도청 과장으로 보직이 바뀌는 듯 했고, 이어 지방사무관으로 신분이 바뀌며 기획계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결국 그해 8월17일 난 ‘제주도청 기획감사실 기획계장 사무취급’이란 다소 긴 직함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일종의 시보격으로 제주에서 첫 공직을 시작한 것이다.

 

 

 

 

그때 모신 분이 이군보(나중 제주도지사 역임) 기획감사실장이셨다. 실력도 있고, 꼼꼼하고 차분한 분이시다. 난 그분으로부터 정말 많은 걸 배웠다. 그분 밑에서 찾으면서 일하다보니 배운 게 많아 후일 중앙행정 무대로 갔을 때도 결코 꿇리지 않았다. 지금도 사실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햇병아리 사무관에게 그 분이 내린 첫 지시는 간단했다.

 

“신사무관! 월동대책 세우시오.” 그리곤 아무 말씀이 없었다.

 

어리둥절했다. 아무 것도 몰랐다. 이리저리 머리를 싸맸지만 무얼 어떻게 하란 소린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의 공직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2편으로 이어집니다>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

=1942년생. 오현고를 나와 육군사관학교 4년을 중퇴, 1967년 5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자로 입문했다. 제주도 기획관,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농무관, FAO(국제식량농업기구) 한국교체수석대표, 농림수산부 축산국장, 농업구조조정정책국장,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YS정부 시절인 1993년 12월 제29대 제주도지사로 취임했다. 첫 민선 지방선거인 95년 6·27선거에선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돼 31대 지사를 역임했다. 그러나 98년, 2002년 두 번의 제주지사 선거에선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후 축협중앙회장을 거쳐 친환경 농업회사법인인 (주)삼무와 전시판매장인 삼무힐랜드를 운영했지만 지사 재직시절 뇌물수수사건에 휘말려 2년여간 수감도중 삼무힐랜드는 문을 닫았다.

 

제주삼다수와 관광복권,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제주세계섬문화축제 등이 그의 지사재직시절 작품이다. 현재 제주생태도시연구소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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